트레이 힐만은 SK를 개조할까? 일본프로야구 니혼햄에서 힐만은 첫 3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2006년 현지 스타일에 적응된 야구로 우승을 이끌었다. 그런 학습능력이 지금 SK에 절실한 가치다.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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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는 2016시즌을 마친 후, 판을 갈아엎었다. 표면적으로 SK 김용희 감독, 민경삼 단장이 순차적으로 팀을 떠났다. 그러나 진짜 SK의 변혁의지는 프랜차이즈 코치들을 대거 떠나보낸 지점에 있다. 2013년부터 SK의 순위는 6위→5위→5위→6위였다. 2012시즌까지 이어온 6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 KS 3회 우승의 영광은 색채가 바래져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엄혹한 현실인식에서 SK는 혁신의 키(key)를 외부에서 찾았다. 미국인 트레이 힐만(54)을 감독으로 선택했다. 힐만의 야구관, 캐릭터에 따라 SK의 방향성이 규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 질문을 할 때다. 힐만은 어떤 감독인가? SK를 구원할 적임자가 맞는가?
니혼햄 시절 힐만 감독
● 힐만은 2006년 니혼햄을 어떻게 우승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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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르면, 힐만의 니혼햄은 2003시즌부터 3년 연속 희생타가 최소였다. 번트를 가장 안대는 팀이었다. 2005년 66개였던 보내기번트는 2006년 176개로 증가했다. 77개였던 도루는 111개로 늘었다. 24회였던 히트 앤드 런 작전은 38회 걸렸다. 주니치와 붙었던 일본시리즈에서 4승1패로 승리했는데, 이때 니혼햄이 성공한 번트총합은 스퀴즈를 포함해 무려 13개에 달했다.
그렇다면 힐만은 ‘성공한 스몰볼 전향자’인 것인가? 이런 야구가 극단적 타고투저 트렌드가 지배하는 2017년 KBO리그에서, 그것도 가장 타자친화적인 홈구장(인천SK행복드림구장)을 사용하는 SK에 적합한 것인가라는 의문에 도달한다.
그러나 핵심은 힐만의 스몰볼이 아니라 유연한 적응력에 있다. 첫 3년의 실패를 통해 힐만은 자신의 야구관을 뿌리부터 바꿨다. SK가 외국인감독의 태생적 리스크인 시행착오기간을 감수하면서까지 데려온 근거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SK 힐만 감독. 스포츠동아DB
● 2006년 니혼햄은 2017년 SK에서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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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햄 선수들이 야구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2006년 니혼햄은 선두타자 출루 시 득점성공률에서 발군이었다. 1번타자 모리모토 히초리가 62.2%를 기록했는데, 이는 퍼시픽리그 전체 1위였다. 2번타자 다나카 켄이 57.6%로 전체 2위였다.
이밖에 2006년 니혼햄은 2점차 이내 성적(40승31패)이 리그 1위였다. 외야라인의 주자 진루 저지율과 실점율에서도 리그 정상이었다. 한마디로 저실점에 능한 강력한 불펜야구, 수비야구를 실현했다. 이것이 니혼햄이라는 팀이 갖는 최적의 승리루트라고 판단한 결과다.
물론 당시 니혼햄은 다르빗슈 유(현 텍사스)라는 당대의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케다 히사시~마이클 나카무라가 주축인 불펜 방어율은 2.36이었다. 오가사와라~세기놀~이나바가 버틴 클린업트리오도 강력했다. 그러나 힐만은 이런 호화멤버의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고, 번트야구·지키는 야구·수비야구로 니혼햄의 이기는 패턴을 완성했다. 힐만은 ‘시대정신’에 맞춰 자신의 야구를 변형시킬 줄 아는 지도자로 볼 수 있다.
당시 니혼햄은 감독의 권한이 막강한 일본야구 풍토와 다르게 단장과 감독의 권력이 분할돼 있었다. 힐만은 일본프로야구의 명(名)단장으로 꼽히는 다카다 시게루 당시 니혼햄 단장과의 권력 분점도 매끄러웠다. 프런트와 분란이 심각했던 보비 밸런타인 전 지바롯데 감독과의 결정적 차이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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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이 힐만
▲생년월일=1963년 1월 4일
▲출생지=미국 텍사스
▲선수 경력=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1985~1987)
▲포지션= 우투우타 외야수
▲지도자 주요 경력=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감독(2003~2007)~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감독(2008~2010)~LA 다저스 벤치코치(2011~2013)~휴스턴 벤치코치(2014~2016)~SK 와이번스 감독(2017~)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