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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택동]황교안 권한대행 앞, 두 갈래 길

입력 | 2017-01-04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항상 흐트러짐 없는 용모와 흔들림 없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유지한다. 오랜 검사 생활을 하면서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옆길로 가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 황 권한대행이 지난해 12월 27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뜻밖이었다. 황 권한대행은 “여러분은 나를 금수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흙수저 중에 무(無)수저”라며 개인사를 꺼냈다. 피란민 가족으로서 가난한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잘 안다”고 했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스토리’와 맞물려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래서 말을 마친 황 권한대행에게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 달라”고 요청했다. 예상과 달리 황 권한대행은 “그건 제가 말씀드렸다”고만 답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말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이틀 뒤 출입기자단과의 두 번째 간담회(출입기자를 2개 조로 나눠서 진행)에서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황 권한대행은 “다 말씀드린 걸 뭘 또 말씀드리느냐”며 역시 뚜렷하게 대선 불출마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다.

 이에 일부 매체에서는 ‘황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에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평소 황 권한대행 관련 기사에 민감한 국무총리실이 이에 대해선 해명 자료를 내지 않았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황 권한대행이 대권 도전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권에서는 행동반경에 제약이 큰 황 권한대행으로서는 설령 대선 출마 의사가 있더라도 드러내기 어려운 만큼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황 권한대행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나쁘지 않다. 지난해 12월 9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뒤 야당과의 관계,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방지 등 당면 현안에 무난하게 대응하면서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정통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만큼 확실한 보수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교계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 구인난을 겪고 있는 보수층, 특히 친박(친박근혜)계는 황 권한대행을 주시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황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달렸다”고 분석했다. 반 전 총장이 보수층 전체를 아우르는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하거나 대선 레이스 도중 낙마하면 황 권한대행 외에 대안이 없다는 취지다. 대선 후보군에 포함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황 권한대행은 동아일보가 2일 보도한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4.4%를 얻어 여권 내에서 반 전 총장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억측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황 권한대행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분명하게 불출마 의사를 밝혀서 논란의 싹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황 권한대행이 대권에 정말 뜻이 있다면 속히 길을 정하기 바란다. 출마를 결심한다면 대통령 대신 정부를 이끌어갈 막중한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판과 함께 원칙을 중시한다는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황 권한대행이 감수할 일이다. 적어도 대통령 탄핵으로 맡게 된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를 대권의 교두보로 활용했다는 말이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