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그런 황 권한대행이 지난해 12월 27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뜻밖이었다. 황 권한대행은 “여러분은 나를 금수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흙수저 중에 무(無)수저”라며 개인사를 꺼냈다. 피란민 가족으로서 가난한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잘 안다”고 했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스토리’와 맞물려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래서 말을 마친 황 권한대행에게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 달라”고 요청했다. 예상과 달리 황 권한대행은 “그건 제가 말씀드렸다”고만 답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말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광고 로드중
이에 일부 매체에서는 ‘황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에 무게를 두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평소 황 권한대행 관련 기사에 민감한 국무총리실이 이에 대해선 해명 자료를 내지 않았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황 권한대행이 대권 도전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권에서는 행동반경에 제약이 큰 황 권한대행으로서는 설령 대선 출마 의사가 있더라도 드러내기 어려운 만큼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황 권한대행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나쁘지 않다. 지난해 12월 9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뒤 야당과의 관계,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방지 등 당면 현안에 무난하게 대응하면서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정통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만큼 확실한 보수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교계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광고 로드중
물론 이 모든 것이 억측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황 권한대행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분명하게 불출마 의사를 밝혀서 논란의 싹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황 권한대행이 대권에 정말 뜻이 있다면 속히 길을 정하기 바란다. 출마를 결심한다면 대통령 대신 정부를 이끌어갈 막중한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판과 함께 원칙을 중시한다는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황 권한대행이 감수할 일이다. 적어도 대통령 탄핵으로 맡게 된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를 대권의 교두보로 활용했다는 말이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