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난 서울시 공무원이다. 공무원으로 일해 온 1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이 글에 모두 쓰고 싶지만 내용을 다 썼다간 근속 2주년 기념일을 맞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공무원이 되기 전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계법인에서 8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처음 출근한 날부터 난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우선 몇천 명이나 되는 시 직원 중 유일한 백인이다. 어디 가도 티가 난다. 다행히 외국인다문화과 직원들이 다 착해서 금방 적응했지만 업무를 익히는 데엔 시간이 걸렸다.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용어 때문이었다. 한국말을 어느 정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공무원 용어는 무척 생소해 새로운 사투리를 배우는 느낌이 났다. 게다가 이 사투리(?)의 난도는 경남 사투리와 제주 사투리의 중간 정도로 느껴질 만큼 어렵다!
시장님은 마음이 넓어 실수가 잦았던 나를 많이 양해해 줬다. 근무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내가 행사의 사회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때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투자자를 꼬셔야 한다”고 잘못 표현했다. 과장님께 꾸중을 한 바가지 들었지만 다행히 시장님은 시원하게 넘어가줬다.
반면 살짝 미울 때도 있었다. 난 영국인이다. 축구광이란 의미. 지난해 5월 FC서울 프로축구단과 행사를 했다. 글로벌센터장 자격으로 잔디도 밟고 선수와 악수도 하고 시축도 하게 돼 있었다. 이런 기회는 모든 축구팬의 꿈인 만큼 기대가 컸다. 그런데 2주 전에 시장님이 갑자기 참석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졸지에 내가 들러리가 된 것이다. 밉다! 밉다!
공무원으로 일하며 보람을 느낀 적도 많다. 1년간 부지런한 직원과 같이 서울 생활에 어려움이나 불편이 있는 외국인들을 도와주는 것은 진짜 보람 있는 일이다. 내년에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공무원 생활을 할 계획이다. 공무원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쓰고, 기사가 나간 뒤 별 후폭풍이 없으면 새로운 에피소드를 더 풀도록 하겠다.
참,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새해 결심을 세웠는지 궁금하다. 누구는 영어 공부를 할 거고 살을 빼거나 담배를 끊거나 술을 줄이려는 분이 있을 것이다. 나의 새해 결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외국인의 한국 생활 흥망성쇠를 매월 재미있게 쓰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것, 또 하나는 내가 쓴 글의 내용으로 민원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