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送年) ― 김규동(1925∼2011)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송년이 있다. 어딘가에는 잔을 부딪치며, 음식을 나누는 송년이 있다. 서로 수고했다고, 올해도 잘 넘겼다고 정리하는 송년도 있다. 앞으로 더 잘하자고 내년을 기대하는 송년도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송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리하고 다짐하는 송년이, 이 시에는 없다. 함께 나누고 경험하는 송년이, 이 시에는 없다. 제목 때문에 요즈음 생각나는 이 시에는 가장 슬픈 송년이 담겨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송년이 들어 있다. 이것은 홀로 외따로 남은, 고독한 사람의 송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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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12월들은 시 바깥, 어디에나 있다. 먼저 떠난 친구들을 생각하는 할머니에게도, 말벗 없이 빈방에 잠겨 있는 아이에게도, 실향하여 타지를 떠도는 이들에게도, 지금은 무척 쓸쓸한 때다. 그러니 세상에는 더 다른 송년들이 있으면 좋겠다. 다정하고 따뜻한 모든 송년들이 춥고 외로운 송년을 되돌아보는 송년이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