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 물리는 한반도 주변 4강]美-러시아 밀월 가시화
1972년 2월 14일 미국 백악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 대통령 최초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앞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미중 관계 정상화의 산파역인 헨리 키신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이 이렇게 말했다. 20년이 아닌 44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예지적 발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70)의 ‘친(親)러시아 반(反)중국 행보’와 맞물리면서 국제적 화제와 함께 외교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외교정책의 ‘러시아 회귀(pivot to Russia)’에 대한 키신저의 예언이 트럼프를 통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미-중-러 3국 간 세력 균형의 이 같은 근본적 변화는 유라시아 대륙 등 국제질서의 대대적인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응하는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의 움직임도 분주해지면서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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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트럼프 당선인은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을 길들여 환율 조작과 무역 역조, 남중국해 영토 분쟁과 대북정책에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선 캠페인 기간 ‘일자리 되찾아오기’ 차원에서 시작된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가 외교의 거장 키신저의 ‘미-중-러 세력 균형 현실 외교’와 접목되면서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 반도 합병을 인정받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푸는 것에 사활이 걸려 있다.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산유국인 러시아는 저유가 여파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해(―3.8%)에 이어 올해도 ―0.6%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이란 핵협상 및 이슬람국가(IS) 퇴치 등에 미국과 협력하며 탈출구를 모색해 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 러시아는 한층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모습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밀월 구도에서는 자신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중국은 초조한 기색이다. 그동안 중국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반대하고 석유와 가스 등을 수입해 러시아의 숨통을 틔워줬다. 러시아는 대신 남중국해와 북한 핵문제 해법 등에서 중국에 목소리를 보태줬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고 벼르는 동안 러시아는 이렇다 할 외교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미국과 러시아 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구 팽창, 시리아 내전 사태 등 구조적인 문제에 서로 합의를 보기가 쉽지 않고 트럼프가 집권 후 러시아에 모두 양보한다면 유럽 국가들로부터 ‘러시아에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듣게 될 것”이라고 견제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도 중국과 함께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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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부형권 bookum90@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 조숭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