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런 발표를 접하면서 노무현 정권 시절이던 2006년 당시 정부가 세운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새삼 떠올랐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15년간의 미래 전력 수요를 예상하고 그에 맞춰 발전소를 몇 개나 건설할지를 정하는 법정(法定)계획이다. 이 기본 계획에서 2017년 최대 전력수요는 7054만 kW였다. 내년 실제 전력수요 전망과 원전 15기(1기=100만 kW) 생산량만큼 차이가 난다.
‘예측이니 틀려도 그만’이라고 넘기기엔 당시 부정확한 전망이 가져온 피해는 너무 컸다. 고종 24년(1887년) 경복궁에 전깃불이 들어온 이래 최악의 전력사고로 꼽히는 2011년 9·15 대정전이 대표적이다. 2006년 전망보다 전력수요가 700만 kW가량 늘어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해 전력 공급이 끊긴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당시 정부는 3년이면 짓는 민간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 증설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됐다. 경기 침체로 전기가 남아돌자 정부 계획에 따라 LNG 발전사업에 뛰어든 회사들이 큰 손실을 본 것이다.
10년 전 전력수급계획을 굳이 거론하는 건 이달 18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보여준 행보 때문이다.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본 문 전 대표는 “판도라가 열리기 전에 판도라 상자 자체를 없애는 노력을 해야겠다. 탈핵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도라 상자를 없애는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을 당장 폐쇄하면 될까. 지난해 기준 국내 전력생산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8%(설비용량 2172만 kW)다. 700만 kW 정도의 수요예측이 어긋나도 블랙아웃이 발생하는데 2000만 kW가 넘는 발전 설비를 없애자는 건 ‘혁명 발언’만큼이나 과격하다.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을 폐쇄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원전을 당장 없애는 것보다는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만 이 역시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게다가 설계수명이 가장 빨리 돌아오는 고리 2호기의 수명 만료는 2023년 4월이다. 폐로(廢爐) 결정은 차차기 정부가 결정할 일이다.
문 대표는 중장기 계획을 미리 세워 대비하자는 취지로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원자력의 대안부터 밝혔어야 했다. 탄소배출 주범인 화력발전을 늘리긴 어렵고 신재생에너지로 원전을 대체하기엔 갈 길이 멀다. 유럽처럼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에서 돈을 주고 전기를 사올 만한 형편도 아니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