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가까이/유경희 지음/416쪽·1만8000원/아트북스
렘브란트의 유채화 ‘자화상’(1658년)에 대해 저자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하지만 아직 잃지 않은 것이 있음을 말해주는 눈빛”이라고 썼다. 아트북스 제공
독특한 테마를 잡아 그 줄기를 따라서 예술 작품을 찾아보는 경험은 일면 흥미롭고 일면 위태롭다. 주제를 이끄는 이의 자기 확신이 클수록 위태로움이 커진다. 다행히 이 책은 들어 아는 바를 탈탈 털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요란한 관광가이드의 대척점에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차분하고 소박한 문장으로 시종 과장 없는 정보를 제시한다. 잔잔하고 편안하다.
‘입’을 다룬 부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채화 ‘담비를 안은 여인’(1490년)처럼 야무지게 다문 아름다운 입매를 보여주는가 하면, 프란시스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3년)처럼 ‘먹는 행위의 극단’을 표현한 그림을 함께 보여주며 읽는 이의 사유를 여러 방향으로 확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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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대한 글에서는 팔을 잃은 두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와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서두에 내세웠다. 팔의 부재로 인한 상상의 힘이 두 조각상의 가치를 한층 높였으리라는 설명이다. ‘배’를 다룬 장에서는 비너스의 볼록한 뱃살에서 출발한 사적 사유를 엮었다.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남긴 말로 알려진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를 속표지에 박아 놓았다. 책 내용보다는 저자가 내놓은 문장의 조밀함과 더 가깝게 연결되는 말이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