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가 차를 도로 한 가운데 두고 없어지자 부득이하게 취중에 직접 300m를 운전한 운전자에게 음주운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모 씨(58)는 올 3월 술자리를 가진 뒤 대리운전을 이용해 서울 구로구의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취중에 대리기사에게 다소 거친 말을 했고, 기사는 이에 화가 나 오후 9시 30분경 임 씨가 잠든 뒤 개봉고가차도 내리막길에 차를 세우고 현장을 떠났다. 이 도로는 왕복 4차로로 이미 다른 차량이 임 씨의 차를 피해 달리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 씨는 대리기사가 없자 차를 옮기기 위해 직접 300m를 운전했다. 하지만 만취 상태였던 임 씨는 차를 제대로 주차하지 못하고 2차로에 차를 세운 뒤 2km를 걸어서 집에 돌아갔다. 당시 임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0.192%. 경찰은 이후 차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 씨의 음주운전을 적발하고 그를 벌금 3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정욱도 판사는 "임 씨의 운전은 대리기사로부터 초래된 위급 상황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 보인다"며 지난달 10일 무죄를 선고했다. 임 씨의 운전은 사고예방을 위한 '긴급피난'이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형법 제22조(긴급피난)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타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