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 ‘무진기행’展… 신진 한국화가 14명 작품 90점 선봬
임태규 작가의 수묵채색화 ‘EREHWON’(2009년). 가로 828cm, 세로 346cm의 널따란 한지에 만화 캐릭터를 닮은 코믹한 인물 군상을 빼곡히 채웠다. ‘nowhere’의 철자를 뒤집은 작품 제목은 영국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가 1872년 발표한 풍자소설에서 가져왔다. 금호미술관 제공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서 제목을 차용했다. 미술관 측은 “안개 자욱한, 시간이 중첩된 소설 속 탈일상의 공간 무진에서 주인공이 체험한 이상과 욕망의 분리 상태를 (전시 관람객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금호미술관에 가서는 대개 일단 지하로 걸어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한 층씩 걸어 내려오며 둘러보게 된다. 이번에는 참여 작가 14명의 회화 작품 90점을 각 층에 엇비슷한 분량씩 나눠 걸었다. 레이아웃에서 흥미로운 점을 찾긴 어렵다. 개별 작품의 매력이 경쟁 아닌 경쟁을 벌이는 차림새다. 기자는 지하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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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실 작가의 수묵채색화 ‘중립적 공간’(2008년). 모호하게 뒤얽힌 공간에 갈라 세운 문의 이미지로 본능이 은폐되는 현상을 표현했다.
▲ 강성은 작가의 ‘Before Mountains’(2011년). 얼핏 단조로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작가가 연필로 그어 쌓은 선의 두께를 읽을 수 있다.
3층 널찍한 벽면을 차지한 김정욱 작가(46)의 그림 역시 흑백 이미지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형체들이 연상시키는 바가 괴이쩍다. 미국 로스웰 공군기지의 외계인 해부 사진, 공포영화 ‘링’이나 일본 괴담만화 책에서 본 산발의 소복 요괴…. 작가는 벽에 “지긋지긋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고 적어놓았다.
▲ 서민정 작가의 ‘먼 길’(2016년).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나선 개의 여정을 상상해 그린 연작 중 일부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