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별도로 추천사를 받지 않고 저명한 인물이 작품이나 작가를 이미 평한 말을 추천사로 활용하기도 한다. 고전적인 명작의 경우다. “이것 말고는 아무 작품을 쓰지 않았다 해도 톨스토이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예술성이 높다.” 톨스토이의 ‘부활’에 관해 아나키즘 사상가 크로폿킨이 한 말이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시인 릴케를 상찬했다. “독일에서 시인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릴케를 떠올린다.”
질문형으로 추천의 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을 이렇게 말했다. “책꽂이에 ‘백년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작가 김연수는 살만 루슈디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을 이렇게 추천했다. “이 놀랍고 터무니없고 귀청이 터질 만큼 수다스러운 이야기꾼에게 어떻게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의 진가를 알아보는 추천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편찬한 뒤 몰이해와 오해를 걱정한 나머지, 책을 “명산에 감춰두고 부본(副本)을 수도에 두어 후대의 성인, 군자들이 열람하길 기다린다”고 하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완성하고 피렌체의 실권자 로렌초 데메디치가 자기를 등용하길 바라며 헌정사를 썼으니, 스스로 책과 자기 자신을 추천한 것이다. 요란한 빈 수레 추천사 열 마디보다 진실한 자기 추천 한마디가 더 나아 보일 때도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