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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입력 | 2016-11-25 18:30:00


#.1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 정원섭 목사 이야기

*정원섭 목사(82)를 취재한 기존 동아일보 기사들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해 만든 이야기입니다.

#.2
1972년 9월 27일을 잊지 못합니다.
저는 강원 춘천의 한 동네 만화가게 주인이었죠.
이날 역전 파출소장의 10살 된 딸 A양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강간당한 뒤 살해된 것이었죠.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3
당시 이 사건을 전해들은 박정희 대통령도 크게 화를 내며
'열흘 안에 범인을 잡으라'고 명령했죠.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4
촉박한 수사 일정에 부담감을 느꼈던 것이었을까요...?

경찰은 저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몰아갔습니다.
이유는 단지 A양이 자주 드나들던 만화가게의 주인이라는 것이었죠.

#.5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경찰은 어떻게든 없는 물증을 만들어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총동원했습니다.

강압수사·고문·회유·협방 등의 방법으로
제가 만화가게 여종업원들을 성폭행했다는 허위 진술을 받아낸 것이죠.

#.6
그들의 엉터리 수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제 아들을 범행 현장에 데려간 뒤
'연필' 하나를 찾아 보여주고는 "이게 네 연필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제 아들은 “맞다”고 대답했죠.

#.7
경찰은 이 '연필'을 이 사건의 범인이 저라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물증으로 만들었습니다.

뒷날 이를 알게 된 제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만들었다는
씻기 힘든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야만 했죠.

#.8
이듬해 3월 재판부는 제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고
11월 대법원도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그때부터 1987년까지
저는 억울하게 15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9
세상은 저의 무죄를 믿질 않았지만
가족만은 달랐습니다.

저는 "나는 범인이 아니야, 날 믿어줘"라고
진심을 담아 호소했고. 가족들은 저를 끝까지 믿어주었습니다.

1987년 전 모범수로 가석방됐습니다.

#.10
출소 뒤 신학교를 졸업해 전 목사가 되었습니다.

또 잃어버린 저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
여러 변호사들과 함께 이번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죠.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재심청구서를 냈지만
모두 기각돼 깊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죠.

#.11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제야 하늘이 제 진심이 알아준 것이었을까요.

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사건 관련 목격자들이 위증 진술을 했다는 사실과
범인의 혈액형은 A형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었죠. 제 혈액형은 B형입니다.

#.12
2011년. 70대 백발의 노인이 된 저는
39년 만에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지난 39년을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이미 지나가버린 제 젊은 날의 시간들입니다.
남들처럼 꽃다워야 할 그때에 전
‘어린이 강간 살인범’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죠.

#.13
2016년 11월24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1심)에서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 진행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심을 거듭해 재판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지만 결국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열흘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죠. 끝까지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14
무죄 판결이 난 후 저는 엉터리 판결이 내려지도록 한
경찰관들과 검사를 ‘용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누명이 벗겨지고 명예가 회복된 것이 정말 기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상처가 다 치유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15
“하늘은 옳지 못한 사람을 반드시 죽인다.”
(若人 作不善 天必戮之·약인 작불선 천필륙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판사 임태혁)는
정 목사와 가족들이 경찰관과 기소검사, 1심 재판장 및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진모 씨 등 경찰관 3명과
그 유족들이 23억88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습니다.

#.16
재판부는 “수사 경찰관들의 행위는 위법적인
고의 또는 중과실의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관 외에 국가 등의 배상 책임은
“과거사정리법에서 정한 국가의 의무는
기본적으로 법령에 의한 구체화 없이는 추상적인 것"이라며
"국가가 직접적 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획·제작 | 김재형 기자·김수경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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