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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대통령 즉각 下野’가 미칠 충격들

입력 | 2016-11-16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대한민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복합위기 상황이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협박은 발등에 떨어진 위험으로 다가왔다. 경제는 길고도 어두운 터널에 갇혔다. 안보와 경제가 이처럼 함께 시험대에 오른 전례가 드물다. 한 예비역 장성은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국난(國難)의 시기”라고 했다.

리더십 추락한 박 대통령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강국 지도자는 국익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마초’ 스타일이다. 러시아 푸틴, 중국 시진핑, 일본 아베에 이어 미국을 이끌 트럼프도 그런 유형이다. 이들 틈에 낀 한국은 민관정(民官政)이 합심해 대응해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리더십이 추락하면서 이미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깜이 안 되는’ 최순실을 비호해 국정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 대통령에게 많은 국민이 분노와 실망,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낀다. 12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대규모 집회에서는 ‘박근혜 퇴진’ 요구가 쏟아졌다. 대통령 하야(下野) 주장은 분명히 민심의 한 흐름을 반영한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실망하면서도 이런 주장과는 거리를 둔 또 다른 민심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지금 박 대통령을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대답하면서도 그럼 대통령이 바로 물러나야 하느냐는 질문에 역시 ‘아니요’라고 답할 국민이다. 안보정책과 경제정책의 기조가 확 바뀔 위험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촛불 민심’을 업고 강경 좌파세력은 물론 야당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한다. 차기 대선 일정 같은 혼란도 문제지만 헌정 질서와 법치를 부정하고 힘들게 일궈낸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대통령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는 수사와 병행해 진통이 따르더라도 후유증이 적은 해법을 찾고, 필요하다면 헌법에 규정된 합법적 방법인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 순리다.

 우리 경제는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 속에 리더십 공백까지 겹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비상 상황이다. 국채금리와 원화 환율이 급등해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발을 빼기 시작한 조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만년 야당’도 아니고 집권 경험을 가진 야당이라면 국정 혼란을 줄일 해법 대신 대통령 퇴진에 나서는 것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침묵하는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도 거의 매일 거리에 나가 ‘독재 타도, 호헌 철폐, 전두환 퇴진’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권력의 태생적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당시 정권과 달리 지금 대통령은 아무리 흠결이 있더라도 국민이 직접 참여한 합법적 선거에서 유권자 1577만여 명의 지지를 얻어 선출됐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임기 도중 탄핵 절차도 없이 강제로 쫓아내겠다는 발상은 민주주의의 기초인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면서 두고두고 악순환을 부를 것이다. 이는 ‘박근혜 개인’에 대한 호오(好惡)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안보 리스크 줄여야


 필자 역시 박 대통령의 행태가 실망스럽다. 하지만 상황이 난마처럼 얽힌 때일수록 헌법과 법률에 따른 해법을 모색해야지 급진적 편법의 유혹에 흔들려선 안 된다. 한국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외국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최대한 차분하게 합법적 방식으로 이 난국을 풀어가야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가 가속화할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