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펴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
노동부 차관을 지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는 “역사를 잘 살펴보면 지금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달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를 펴낸 정병석 한양대 특임교수(63·전 노동부 차관)가 쏟아낸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조선시대 실패한 제도를 오늘날에 비추어 봐도 별다른 시대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두루뭉술한 제도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약해진 조선의 상황은 지금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며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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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의 궁금증은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은 한중일 3국 중 왜 유독 한국은 국력이 다른 두 나라보다 약했는가에서 출발했다. 관직에 오래 근무한 경력을 살려 조선과 성리학의 원조인 중국의 국가제도를 면밀히 분석하다 ‘디테일’의 차이가 작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냈다. “조선시대 법과 제도를 분석해 보면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었다”며 “백성들이 납득할 만한 균형 있는 국가 운영이 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조세제도인 공물제만 봐도 국가에서는 어떤 물품을 납품하라고 군·현 단위로 배정만 했습니다. 군수나 현감이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내라고 하든 상관 안 했죠. 그러다 보니 양반은 납세 의무에서 쏙 빠지고 신분이 낮은 백성들만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제도가 명확히 정비되지 않은 이유는 조선이 중국에서 도입한 성리학이 본토와 다르게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정 교수는 분석했다. 도덕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던 조선 성리학자들이 법과 규정을 치밀하게 정비하는 것을 ‘성리학에 반하는 조치’라며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면서 적지 않은 관료들은 허술한 제도 아래에서 자신의 의무를 피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관료들 사이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법망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는 권력형 비리, ‘흙수저’로 표현되는 사실상의 계급 등 조선시대 문제는 오늘날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해법을 찾았을까. 정 교수는 “우선 공론의 장에 모든 것을 열어놓고 소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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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이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통한 뒤 최고 권력층에도 성역(聖域)이 존재하지 않는 공평하고 강력한 법과 규정이 적용될 때 혼란스러운 질서가 다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치인과 관료의 책임을 강조했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결국 정치인과 관료들이기에 이들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책을 쓰면서 절감했습니다. 그들이 딴생각을 하는 순간 국가 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