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서서히 무대 바닥에 누워 있던 커다란 무엇인가가 올라온다. 가로 22m, 세로 12m의 대형 거울이다. 평면적인 대형 거울은 곧 입체적 세트가 된다. 50도까지 올라와 멈춘 거울은 바닥의 대형 그림을 비춘다. 샹들리에, 꽃밭 등 5번 바뀌는 그림은 새 공간을 만들어낸다.
2개의 평면이 입체를 구현한다는 점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출연진이 등장했을 때다. 정면으로 바라보면 평범한 무대일 뿐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위로 올리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출연진과 무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무대를 엿보는 관음증적 경험도 선사한다. 단지 대형 거울 하나만 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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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무대에 선 글래디스 로시(비올레타), 루치아노 간치(알프레도), 카를로 구엘피(조르조) 등 주역들은 거울에 눈을 사로잡힌 관객의 귀를 잡아채는 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로시가 오케스트라와 호흡이 안 맞아 박자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는 1막뿐이었다. 2막부터는 비올레타 그 자체였다.
3막에서 조명의 사용도 인상적이었다. 단 2대의 키조명은 반사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마치 여러 방향에서 쏟아지는 조명 같은 효과를 낸다.
공연이 끝나갈 즈음 거울이 서서히 올라간다. 잠시 뒤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관객까지 비춘다. 아차. 그때 깨닫는다. 결국 나 자신도 무대 위 존재였구나. 연출이란 이런 것이다. 1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28만 원. 02-399-1000 ★★★★☆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