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새누리당은 악화 일로를 걷던 '최순실 게이트' 파문을 수습할 첫 단추를 겨우 끼웠다는 분위기였다. 비박(비박근혜) 진영은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친박근혜) 지도부의 사퇴 등 당 쇄신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독자적인 당 쇄신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류-비주류 간 내홍은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놓이게 됐다.
● 한 고비 넘긴 새누리당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에 "참담하다"고 반응했던 여권 대선주자들은 8일 국회에 총리 추천을 요청한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보냈다.
광고 로드중
박 대통령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 가던 비주류 의원들도 한 고비 넘겼다는 반응이 많았다. 3선 이상 비주류 중진들의 '구당(救黨) 모임' 간사격인 황영철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사태 수습의 첫 걸음을 잘 내딛었다고 본다"며 "남은 문제는 현 지도부 퇴진을 포함한 쇄신 방향"이라고 말했다. 총리 추천권을 포함해 일단 '공'이 야당으로 넘어간 만큼 당분간 당 쇄신에 주력하겠다는 얘기다.
다만 전날 '대통령 탈당' 카드를 꺼낸 김무성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박 대통령과 선 긋기에 나섰다. 박 대통령이 야당과 조율 없이 덜컥 "국회를 찾은 데 대해 "만나지 않겠다는 야당 대표를 찾아다니는, 이런 시도는 참 잘못됐다"면서 "국민의 마음을 더 좌절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갈피 못 잡는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계기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로 보고 있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박 대통령이 오늘도 메시지가 없을 경우 친박 지도부가 먼저 나서 대통령에게 '김병준 지명 철회'를 요구하려고 했다"면서 "대통령이 국회에 총리 추천을 요청했으니 9부 능선을 넘은 셈"이라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하지만 비주류 의원들은 현 지도부가 퇴진한 뒤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수습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라 오히려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주류 측에서는 분당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도 공개적으로 나왔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김성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이미 의원들은 이정현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저항에도 변화가 없다고 하면 이제는 갈라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 내홍 속에 자중지란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날 비공개 원내대책회의에선 하태경 의원이 국정감사 당시 최순실의 증인 채택을 막은 원내지도부에 책임론을 제기하자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발끈하며 "누가 뭘 막았다는 것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후 김 수석이 "그럼 내 책임이니 관두겠다"고 말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실제 사퇴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전북 전주에 지역구를 둔 정운천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위원에서 배제된 데 반발하며 국회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정 의원은 "친박계인 김선동 의원(서울 도봉을)으로 갑자기 교체됐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정 의원이 지도부 퇴진 주장을 밝힌 데 따른 '괘씸죄'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김 수석은 "의석수에 따라 권역별로 할당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홍수영기자 gaea@donga.com
강경석기자 coolup@donga.com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