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들을 대충 갖춘 어느 날 학교에서 나와 섀턱 애비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맛집과 크고 작은 상점이 많은 거리였다.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간판도 눈에 안 띄는 작은 문구점이 보였다. 수입 문구용품들이 전시돼 있고 종이를 고르면 수제로 명함을 만들어주는 곳.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무광의 은빛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곡선의 가위였다. 엄지와 중지에 그 가위를 끼우고는 살짝 자르는 시늉을 해보았다. 가벼운 데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과 결코 무뎌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예민한 칼날. 본체를 코팅 처리해서 테이프를 잘라도 날에 달라붙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가위의 값은 12달러.
‘궁극의 문구’를 쓴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가위를 살 때는 “신발 고르듯” 자신에게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칼날 끝이 휘지 않으면서 서로 잘 맞고 가위질을 해봤을 때 가볍게 되는 것으로.
지난 일요일에 초등학생 조카 둘과 시간을 보내다가 슈퍼마리오 등 작게 그린 게임 캐릭터들을 책갈피로 만들겠다고 하기에 가위를 들고 내가 오려줬다. 조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큰이모는 어떻게 그렇게 가위질을 잘해?”라고 물었다. 내 자매들이 그 애들만 할 때 수없이 사들였던 종이 인형들을 몇 년 동안 정교하게 오려주다 생긴 솜씨라는 것을 조카들은 알 리 없겠지. 있을 때는 몰라도 막상 없어 보면 불편한 것. 가위 말고도 그런 사물들은 또 있을 것이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