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죄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의 유명한 첫 부분이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이 부분만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서문은 역사에 대한 관심의 일반적 성격을 잘 요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문이 책 한 권에 국한되지 않고 저자의 사상 전반을 요약한 경우도 있다. 철학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서문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 서문이 그러하다. 주자(朱子)가 ‘대학’과 ‘중용’을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로 재편하며 집필한 ‘대학장구서’와 ‘중용장구서’도 성리학의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
전통 동아시아의 문집에는 서(序) 외에 책 말미에 본문의 대강이나 간행 경위, 저자 관련 사항 등을 정리한 발문(跋文)을 실었다. 첫머리에는 제사(題詞)라 하여 책 내용이나 출간 의미에 관한 운문(韻文)을 싣기도 하였다. 문집은 저자 사후에 간행하는 것이 관례이니 서, 발문, 제사 등은 저자가 쓴 것이 아니다. 정몽주의 문집 ‘포은집’에는 송시열, 노수신 등이 쓴 서와 유성룡, 조호익 등이 쓴 발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서문은 ‘국민 애송시’라 할 윤동주의 ‘서시(序詩)’일 것이다. ‘서시’라는 제목은 유고 정리와 출간 과정에서 유고 전체의 서(序)에 해당한다는 의미를 살려 붙인 것이다. 시인의 삶과 사상이 오롯하게 깃든 ‘서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빼어난 ‘시적(詩的) 서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