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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체육대회 경품행사 빼야하나 고민”

입력 | 2016-10-12 03:00:00

[김영란법 시행 보름째… 애매한 시행령에 곳곳 혼란]




 

“법 위반 1호가 되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고 매번 하던 경품 행사를 없애려니 사람들이 ‘왜 이렇게 소극적이냐’며 불만이에요.”

 지방공무원 J 씨는 다음 달 지역주민 등 800여 명이 참석하는 체육대회를 준비하느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후 첫 행사라, 그동안 열어 왔던 경품 행사 순서를 넣어도 좋을지 알쏭달쏭하기 때문이다.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에 질문을 남겼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다. 체육대회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부정청탁금지법이 12일로 시행 보름째를 맞는다. 깨끗하지 못한 암묵적 관행을 깨뜨리는 순기능도 있지만 권익위마저 쩔쩔 매는 모호한 법령 때문에 한국 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산업에 미치는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 부정청탁금지법이 부른 ‘업무 병목현상’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한 공공기관은 전문가가 동행하는 해외 출장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장비 책정도 문제지만, 동행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기관이나 전문가도 없다. 이 기관 관계자는 “내년 계획을 완전히 바꿔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11월 포럼 개최를 준비하고 서울시의 한 부서도 마찬가지. 이 부서 관계자는 “우리 예산을 집행하는데도 법 조항을 하나하나 따져야 해서 일이 곱절로 늘었다”며 “시 감사부서에도 저촉 여부를 물었는데, 워낙 문의가 많아 금방 답을 못 해 준다”고 했다.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대기업 직원들의 하소연도 늘고 있다. 한 대기업의 대관 담당자는 “식사 3만 원 이하는 예외인 조항도 아무 소용이 없다. 공무원들이 사람 자체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며 “세종시의 한 공무원은 문자나 모바일 메신저도 보내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 ‘업무 마비’ 권익위… 일부는 긍정 반응

 모호한 법 조항으로 고민하는 실무자들과 시민들은 권익위의 유권해석만 바라보는 상황이지만 권익위는 문의에 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 시행을 전후로 각각 13일간 올라온 게시물 2223개 중 법 시행 이후 올라온 게시물의 수는 모두 1488개로 시행 이전의 2배에 달했다. 반면 권익위의 응답 횟수는 시행 이전 133개(전체 글의 18.1%)에서 시행 이후 15개(전체의 1.0%)로 뚝 떨어졌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과)는 “권익위에 일일이 해석을 요구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건 법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며 “시행령을 보완하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법 시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한 사립대 대학원생 C 씨는 “논문 심사 때면 지도 교수에게 식사나 양주를 대접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 대형 병원의 한 교수도 “수술 청탁을 많이 받았는데 법 시행 이후 요청이 뚝 끊겼다. 청탁이 와도 ‘법 때문에 안 된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게 돼 좋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권오혁·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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