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전설적 실수들’의 배경은 지금은 사실상 사라진 활판인쇄다. 조판하는 데 쓰는 활자 크기가 작아 대(大)와 견(犬)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글자와 문장 부호, 기타 기호 낱낱을 납으로 주조한 다양한 꼴과 크기의 활자들을 문선공(文選工)이 뽑아서 상자에 담는다. 그런 다음 식자공(植字工)이 원고와 편집자 지시에 따라 활자를 배열하고 전체 판 크기에 맞추어 글자와 행 간격을 조정했다.
네모 한 칸에 한 글자씩 쓰는 원고지는 활판인쇄공이 작업하기 좋은 구조였지만, 원고지에 쓴 글을 보고 활자를 뽑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가 최인호가 신문 연재소설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신문사 측은 좀처럼 알아보기 힘든 글씨를 잘 알아보도록 훈련시킨 ‘최인호 전담’ 문선공을 따로 두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부터 전산 조판이 널리 보급되면서 활판인쇄가 사라져 갔다. 활자를 짜서 판을 만드는 조판소는 1998년 무렵 모두 문을 닫았다.
활판인쇄물에는 활자 모양 그대로 ‘자국’이 남는다. 손으로 종이를 쓱 만지면 손끝과 손바닥에 올록볼록, 까슬까슬, 오톨도톨한 요철(凹凸) 느낌이 전해져 온다. 매끄럽기만 한 오늘날 책에는 없는 그 느낌이 그립다는 이들도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활판인쇄소는 경기 파주시의 출판도시활판공방이 사실상 유일하다. 상업적으로 활성화되기는 어렵더라도, 역사적으로 유구한 인쇄출판문화를 자부하는 우리로서는 활판인쇄를 보전해 나갈 이유가 충분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