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국에 왔을 때 식당에서 사람들이 서로 계산하겠다며 싸우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큰소리 내고, 계산대 앞에서 몸싸움하고, 심지어 서로 지갑을 빼앗기까지 하는 모습을 그때까지 본 적이 없거든요. 그 후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지내며 한 사람이 전체 밥값을 다 계산하는 게 한국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죠.”
1976년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를 떠올리며 마르틴 프로스트 전 프랑스 파리7대학 교수는 가볍게 웃음 지었다. 프랑스 태생인 그는 당시 일본 유학 중 한국을 여행하는 참이었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그의 삶은 이 여행으로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됐다. 한국의 매력에 빠져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후 그는 한국인과 결혼했고, 83년 프랑스인 최초로 파리7대학 한국학과 교수가 됐으며, 콜레주 드 프랑스 한국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국적도 받았다. 현재 파리7대학에서 은퇴한 뒤 서울에 머물고 있는 프로스트 교수는 유창한 한국어로 “돌아보면 처음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 계산 문화가 한국을 더 특별하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친구는 나중에 또 만나잖아요. 지금 내가 돈을 내도 상대방이 양심이 있으면 서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계산하게 되죠. 한자리에서 밥값을 딱 나눠 내는 것보다 그런 방식이 훨씬 멋있다고 생각해요. 나이 많은 사람이 밥을 사는 것에 대해서도, 저는 그 사람이 아무 기대 없이 정말 좋은 마음으로 베푸는 거라는 점에서 무척 아름다운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틴 프로스트 전 프랑스 파리7대학 교수. [동아일보]
“제가 선임자로서 밥값을 다 내는 거죠. 우리는 둘 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니까, 절대 그에게 밥값을 낼 기회를 주지 않을 거예요.”
프로스트 교수의 말이다. 이처럼 예외적으로 한국식 계산 문화를 알고 실천하는 외국인도 있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외국인에게 이런 방식은 생소할 수 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 여행안내서 ‘인사이트 가이드 : 한국(Insight Guides: South Korea)’ 예절 항목을 보면 ‘식사를 한 뒤엔 그룹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계산서를 집는 게 한국의 관습이다(당신은 친구만 잘 고르면 공짜로 밥을 먹고 음료를 마실 수 있다!)’라는 대목이 있다. 영국 런던대 소아스(SOAS) 한국학과의 연재훈 교수 등이 펴낸 책 ‘컴플리트 코리안(Complete Korean)’에도 ‘한국에서는 보통 초청자나 연장자, 혹은 지위가 가장 높은 한 사람(the most senior figure-in age or status)이 식대를 전부 계산한다. 모두를 위해 밥값을 내는 것은 시니어의 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당신은 절대 한국인에게 그들의 문화 전통을 깨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시니어가 되고, 끝내는 모든 것이 공평해진다!’고 적혀 있다.
보데인 왈라반 성균관대 교수. [동아일보]
“물론 한국처럼 ‘형이 동생을 위해 음식 값을 다 내는 문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요.”
“모르는 사람 밥값을 왜 내나?”
이매뉴얼 패스트라이시 경희대 교수. [동아일보]
“그런데 한국은 누군가 한 사람이 밥값을 내는 분위기라, 처음 왔을 때는 계산을 누가 하는 건가 밥 먹을 때마다 헷갈렸어요.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고, 제가 연장자로서 밥값을 내는 일도 많아졌죠.”
패스트라이시 교수의 말이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2013년 한국 선비정신과 예학, 풍수 등을 소개한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펴낼 만큼 한국 문화에도 정통하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뒤 장인이 지어준 이름 ‘이만열’을 즐겨 사용하는 ‘준한국인’이기도 하다. 그가 꼬집은 한국식 계산 문화의 문제점은 때때로 정이 없는 상태에서도 밥값이 오간다는 점이다. “주미한국대사관 등에서 일할 때 보니, 고위직이 식당에 갔다가 우연히 하급자를 만나면 그쪽 테이블의 음식 값까지 전부 계산하더라.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동석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식 계산 문화가 아름다운 건 그 안에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아무 대가 없이 대접하는 한국인의 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마음 없이 모르는 사람의 음식 값을 내거나 대가를 바라고 식대를 지불하는 건 한국식 계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6년 9월 28일자 10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