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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실감나는 폭발장면 위해 폭탄 실은 열차 충돌시켜”

입력 | 2016-08-31 03:00:00

신상옥-최은희 아들 신정균 감독이 전한 ‘부모님과 영화광 김정일’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아들인 신정균 씨는 “아버지는 일에 몰두하느라 가족들에게 살가운 분은 아니었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만큼은 본받고 싶다”고 말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아버지가 생전에 자주 ‘김정일은 영화 욕심이 정말 대단했다’고 하셨어요. 북한에서 ‘탈출기’(1984년)를 찍을 때 김정일에게 ‘기차 충돌 장면이 필요한데 미니어처로는 실감이 안 난다’고 했더니 진짜 달리는 기차에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충돌하게 했다더라고요.”

2006년 타계한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씨(90)의 아들인 신정균 씨(53)는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의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26일 기자와 만나 최 씨의 근황과 신 감독이 전한 북한 영화에 대한 얘기 등을 소개했다.

이 작품은 신 감독 부부의 자녀와 친척은 물론이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계자, 홍콩 수사관의 증언까지 망라해 1978년 벌어진 이 부부의 납북사건을 담았다. 김정일이 신 감독 부부의 납북을 지시했고, 그 이유가 북한 영화의 부흥을 위해서라고 설명하는 육성까지 담겨 벌써부터 화제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서 탈출한 뒤 1988년 미국에서 찍은 가족사진. 가운데 안경 쓴 학생이 신정균 씨. 신정균 씨 제공

생전에 신 감독은 아들에게 자신이 북한에서 영화를 찍던 시기의 에피소드를 자주 들려줬다. “아버지가 ‘소금’(1985년)을 찍다 바람 부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하자 김정일이 그 자리에서 헬리콥터까지 동원할 정도로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고 하더군요.”


신 감독 부부가 북한에서 탈출하고 1년이 지난 1987년 신정균 씨는 생이별한 부모와 9년 만에 미국에서 상봉했다. 신 씨는 “그때 아버지는 ‘우리가 북한에서 잘 지내다 왔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 당장은 영화 제작을 위해 필요하니 귀하게 대접하는 듯했지만 짜서 나오지 않으면 버려지는 치약과 같은 신세라 늘 두려웠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 부부는 북한에서 3년여 동안 무려 17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신 감독 부부가 북한에서 탈출한 뒤 미국을 거쳐 1989년 한국에 돌아오자 일각에서는 ‘자진 월북설’이 나돌기도 했다. 신정균 씨는 “부모님이 납북돼 북한에 있을 때 사람들이 ‘너도 영화 하지 말고 수영이나 배워 강 건너 (북한에) 가라, 그러면 더 잘 살겠다’는 조롱을 받았다”면서 “어린 시절에 이런 시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신 씨는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섰지만 제작진을 만난 뒤 마음이 바뀌어 증언과 출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한다. “영국인 감독들이 연락해 왔어요. 어머니 아버지 삶이 웬만한 영화 이상으로 스펙터클한데 도대체 왜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신 씨는 현재 어머니를 옆집에서 살면서 돌보고 있다. 최 씨는 최근에는 걷기 힘들어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고, 지병으로 정신력도 온전치 못한 상태다.

“어머니가 몸이 불편해지면서 사람 만나는 걸 꺼리세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멋진 여배우로 남고 싶으신 거죠. 그래도 새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기분 좋아했어요. ‘우릴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요.”

어린 시절 납북된 부모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신 씨는 1995년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9년 ‘삼양동 정육점’이라는 스릴러물로 데뷔하며 주목받았지만 현재는 에로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 씨는 언젠가 어머니의 삶을 영화로 다루겠다는 오랜 꿈을 갖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는 늘 영화계에서 성공하지 못한 저를 안타까워하셨어요. 하지만 제 꿈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언젠가는 제 어머니의 기구한, 마음 아픈 삶을 다룬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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