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대표, 당신 많이 컸네.”
박성원 부국장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취임 첫날 “대통령과 맞서고 정부와 맞서는 것이 정의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여당 소속 의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 적잖은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안상수 대표를 면박 줬던 이명박 대통령의 예에 비춰볼 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이 대표가 ‘감히’ 직언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일 수 있다. 이 대표가 대표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민심과 괴리가 있다면 누구보다 대통령, 청와대, 정부에 신속·정확하게 전달하겠다”고 했을 때도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 대표는 대표 수락 연설에서 “특권과 기득권, 권위주의는 타파의 대상이 될지언정 우리 주위에는 머물지 못할(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이 현직을 유지하면서 검찰 수사를 받는 것과 같은 특혜가 또 있을까. 김대중 정부 시절 금품 수수 의혹을 받은 신광옥 민정수석이나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된 박주선 법무비서관은 (비록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사표를 쓰고 검찰 조사를 받았다. 우 수석이 국민의 상식이나 전례에 어긋나게 민정수석 자리를 유지하면서 검찰 조사를 받는 일이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으로 벌어진다면 특권과 기득권을 타파하겠다는 이 대표의 다짐도, 벼를 익히는 바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리도 말짱 허언(虛言)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주말 “땀내 나는 사람 땀내 나게 찾겠다”며 가두리 양식장으로, 소방서와 경찰서로 뛰어다녔다. 민생 현장을 살피는 것이야 뭐라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당 대표가 당내 대선주자들은 물론이고 주류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지로 뽑힌 원내대표까지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정국 현안에 입을 닫은 채 민생만 외치는 것은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성주나 김천을 방문해 설득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우 수석 사퇴론을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의 식물정부 만들기’로 싸잡아 역공하며 이전투구를 벌이는데도 ‘이정현의 바람’은 대체 어디로 불고 있는 것인가.
박성원 부국장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