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차원 ‘관리대책’ 발표
▼ 감기 항생제 처방, 5년내 절반 줄인다 ▼
한국은 항생제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 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 보고서(2015년 하반기)’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이 23.6%로 가장 높았고 병원(18.7%)과 종합병원(11.1%), 상급종합병원(4.8%) 순이었다. 양으로 따지면 68.9%가 의원에서 사용됐다(2012년 기준). 감기 같은 가벼운 증상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관행 탓이다. 국내 감기 환자 10명 중 4명(44.1%)은 항생제를 처방받고 있다(2015년 기준). 감기는 대부분 바이러스가 원인이라 세균 감염 치료제인 항생제를 처방할 필요가 없다.
영유아에 대한 처방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하반기 항생제 처방을 받은 사람 중 절반(47.9%)은 0∼6세 아동이다. 어린아이가 많이 걸리는 급성중이염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비율은 무려 84.2%나 된다. 이처럼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이 생기는 탓에 영국 정부는 2050년 전 세계에서 항생제 내성으로 연간 10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이 같은 위험성 때문에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가 11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제86회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2016∼2020)’ 5개년 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 메티실린 내성으로 해마다 1000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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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는 세균에 의한 감염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품이다. 하지만 이후 항생제를 계속 사용하면서 세균 중 일부에서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항생제를 이겨 내는 내성균이 생겨났다. 이후 내성균은 더욱 강력해졌고 현재 기존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가 나타나고 있다.
정용필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북유럽에서는 지금도 폐렴 치료에 페니실린을 사용하지만 국내에서는 페니실린의 효과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항생제 내성률(항생제 투여 시 살아남는 세균의 백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은 편이다. 가령 포도상구균의 항생제 메티실린에 대한 내성률(67.7%)은 영국(13.6%)이나 프랑스(20.1%), 일본(53%)보다 높다.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500병상 이상 병원에서 메티실린 내성균 감염이 연간 약 3000명에게서 나타나고, 이 중 3분의 1은 사망에 이른다.
○ 주요 항생제 내성률 20% 줄인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5개년 계획에서 우선 병의원에 대한 항생제 적정성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감기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병의원은 최대 진찰료 1%를 가산하고 반대로 높은 병의원은 1%를 삭감했는데, 2019년부터는 그 범위를 최대 3%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내성균 환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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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대책이 항생제 내성에 대한 예방, 즉 항생제를 덜 쓰게 하는 방침 위주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선진국은 이미 새로운 항생제 대체재를 연구하고 있다. 영국 항생제 내성 대책위원회는 인류를 살릴 항생제 대체 물질로 △박테리오 파지(자연계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로 자신의 유전자를 세균에 집어넣어 세균을 죽임) △리신(파지가 만드는 단백질) 항체 △기능성 유산균 등을 제시했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대한감염학회 이사)는 “연구 개발은 병원이나 제약사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smiley@donga.com·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