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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영]당신이 아파봐야 나을 입시病

입력 | 2016-08-10 03:00:00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사랑하는 여인이 작전 수행 중 부상을 입었다. 조선시대 엄격한 신분제도 탓에 포도청 노비인 이 여인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지금의 경찰청 광역수사대장 격인 종사관(이서진)은 여성 형사인 다모(하지원)를 마음에만 두고 있다가 손수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나지막이 한마디 던졌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2003년 방송된 드라마의 대사다. 뭘 해주진 못하지만 아픔을 공감한다는 뜻을 잘 표현했다. 대입 수시 원서 접수가 한 달여 앞이라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왜 요 모양일까’라고 고민하던 중에 이 대사가 떠올랐다.

전형 요강이 학교마다 다른 건 물론이고 과마다 제각각이라 수험생 부모라면 조금 나을 뿐 보통 국민이나 교육부 장관조차 제대로 알 길 없는 한국의 대학 입시제도다. 연간 2000만 원 받는 입시 컨설팅 학원이 등장하는 이유다.

서울의 어느 대학 입시설명회에서 들은 말이다. “내신이 나빠도 걱정 마세요. 논술 전형으로 가면 ○등급도 합격한 사례가 있어요. ○○학과에선 수시에서 정원 2배수 넘는 예비자까지 합격했어요.”

내신이 좋으면 이 전형, 그렇지 않으면 저 전형으로 가라는 말이고 100명을 뽑는데 200등 밖 예비자도 합격할 수 있으니 많이 지원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뭔가 부족해도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인데 불합격은 누구 몫인지 궁금했다. 주관적 판단이 크게 좌우하는 수시에서 어찌 그리 세밀하게 평가하길래 예비 합격생까지 길게 줄을 세울 수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얼핏 들으면 충분히 기회를 주는 듯하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각 대학 입맛에 맞게 맞춤형 입시 준비를 해온 어느 부잣집 수험생과, 지방 소도시에서 사교육 없이 홀로 땀 흘려 자기소개서를 쓴 학생이 같은 출발선에 있다고 보는 이는 교육부 사람들 외엔 없지 싶다. 교육부는 지역균형선발과 학교장추천을 내세워 ‘너희에게도 기회를 줬다’라고 변명하지 말라. 그 대신 품이 들고 반발도 나오겠지만 어느 고교의 수험생이든 같은 과에 지원하는 누구와 경쟁해도 뒤처지지 않을 실력으로 모든 전형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교사의 역량을 키우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아직 그렇질 못해 그런지 경쟁률이야 치솟든 말든 수능 최저등급을 요구하지 않거나 수능 성적이 아예 필요 없는 전형도 수두룩한 덕분에 현 제도에 만족해하는 수험생이 꽤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족도가 낮아 보이진 않지만 범접하기 힘든 ‘그들만의 전형’은 이름난 대학에 몰려 있고 손만 내밀면 누구나 닿을 수 있는 전형은 지방 하위권 대학에 주로 있으니 내가 시비를 걸 수밖에 없다. 돈 많은 할아버지나 첩보원 같은 엄마가 없는 수험생도 교사와 함께 열심히 하면 어떤 전형으로든 상위권 대학에 응시할 수 있는 입시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다.

그러려면 교육당국이 손놓고 있으니 당신부터 아파봐야 한다. 가족 중 수험생이 없어도 어지간한 투자 없이 꿈도 못 꾸는 특기자 전형에 좌절하고 자율동아리 활동에 막막해하는 수험생의 박탈감에 공감하자는 말이다. 가족 중 수험생이 있을 때만 반짝하던 관심이 수능 끝나면 사라지니 교육당국은 입시 여론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너나없이 공감하고,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갈수록 두꺼워지는 건 아닌지 살펴 당국을 향해 “개선하라”고 외치길 희망한다. 훗날 “말이 기회균등이지 쟤들만 원서 낼 수 있는 전형”이라며 한숨짓는 자녀 혹은 손주에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때늦은 위로의 말만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