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유학생 신빙제(辛빙길·28·여) 씨는 지난 주말 서울 관광을 위해 지하철 2호선을 탔다가 목적지인 홍대입구역을 그대로 지나쳤다. 중국어 안내방송이 나온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역 이름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신 씨는 “당연히 역 이름도 중국식 발음으로 방송되는 줄 알았다”며 “제일 중요한 역 이름을 알아들을 수 없다면 중국어 안내방송은 사실상 하나마나”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1∼4호선)에 따르면 현재 전동차에서 역 이름을 중국식 발음으로 안내방송 하는 곳은 강남역과 양재역 오이도역 인천역 4곳뿐이다. 나머지 역은 ‘홍대입구’처럼 한국 발음을 그대로 방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에는 중국어 서비스를 제대로 해달라는 민원이 수년째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강남역 등 시범서비스 대상인 4곳을 제외하곤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8일 오후 찾은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는 명동 등 주요 관광지를 찾은 중국인들로 붐볐다. 이날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은 것은 역 근처 주요 건물의 위치 등을 표시한 종합안내도였다. 안내판에는 종합안내도(綜合案內圖)라는 한자 표기가 있었지만 정작 중국인 관광객들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어를 실제 중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안내도(案內圖)라는 단어는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라며 “이 경우 종합지시도(綜合指示X)라고 쓰는 게 맞다”고 말했다. 건물명 표기도 엉터리였다. 을지로입구역 주변에 위치한 역전우체국은 ‘驛前郵遞局’으로 병기돼 있었는데 ‘우체국(郵遞局)’이란 단어 역시 중국어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중국에선 우체국을 유쥐(Y局)라고 부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광객 대부분은 안내 표지판보다 인터넷 검색에 더 의지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 덩펑루(鄧鵬陸·23) 씨는 “안내판을 보면 도움이 되기보다 더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웬만하면 인터넷 검색으로 길을 찾고 있다”면서 “역명을 읽거나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많아 아예 역의 고유번호를 외우는 경우도 있다”고 불평했다.
서울시는 2013년 자문단까지 구성한 뒤 올해까지 외국어 안내표지판의 오류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 진행률은 아직까지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한국식 발음으로 안내방송을 하는 건 중국인 입장에선 정보가 아니라 잡음이나 마찬가지”라며 “잘못된 외국어 방송이나 표기 등은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변수연 인턴기자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