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도한 동아일보 1936년 6월 28일자 기사. 동아일보DB
‘전 미국을 달굴 대통령 선거전은 공화당 전국대회 개최 및 대통령 후보 지명으로 뚜껑을 열었는데…’(동아일보 1936년 7월 19일자)
미국 대선 경쟁의 개막은 태평양 건너 멀리 조선까지 전해졌다. 앞서 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후보에 재지명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의 충격을 극복하고 상승일로인 경기에 힘입어 재선 가도에 확실한 발판을 굳히고 있었다.
‘경제적 특권으로부터 경제적 평등을 탈환하자, 빈곤과 부패에 대한 투쟁이면서 데모크라시의 부활을 위한 투쟁을 개시하자―그렇게 주장함으로써 경제적 특권계급의 타파를 부르짖는 품이 국가통제라는 이름하에 사회공공적인 형태의 개혁을 의도하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국시인 데모크라시가 경제적 특권 때문에 죽었으며, 빈곤과 부패의 온상이 경제적 특권계급이라는 취지였다. 신문은 덧붙인다.
‘자본주의적 번영을 대표하는 미국이 자본의 특권을 문제 삼는 점은 이채롭다. 개인주의와 자유의 나라가 통제의 강화를 말하는 오늘이 실로 기이하다. 선거전에 내건 정책이긴 하지만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됨은 시대의 조류에 따른 것이라 할 만하다. 황금의 나라도 갱신의 진통이 이러하다고 할까.’(7월 3일자)
그렇게 활발히 자기 정화를 거듭해온 미국은 이제 피해의식과 자기보호 본능을 감추지 않은 채 배척과 고립을 주창하는 트럼프주의를 목도하고 있다. 80년 전보다 정책은 오히려 실종되고, 정치가 뒷걸음질치는 감마저 주는 것은 그래서인가.
‘뉴딜을 공격하는 공화당도 뉴딜의 방법을 취한 정강을 내걸고 있고, 민주당도 공화당이 과거에 내놓은 안을 뉴딜로 제창하는 등 기이한 모양새다. 양자 모두 극단의 자본주의 발호는 배척하고 국민 대중의 생활 안정을 주장한다. 이는 극단의 자본주의국으로서 가장 혹독한 불황의 세례를 받은 미국의 국민감정의 추이를 반영하는 것일 게다.’(6월 30일자)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그러나 양당이 모두 대중에 아부하려 해서인지 실업 구제, 농업 구제…, 이것도 구제 저것도 구제뿐이다. 미국 건국의 자랑이던 독립자존의 기풍이 상실되는 때를 맞이하여, 국민의 각오를 요청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음은 그 해악을 훗날에 남길 우려가 있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