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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실험실]진수성찬 과열량食 vs 푸성귀 제철웰빙食

입력 | 2016-07-25 03:00:00

임금님 수라상-노비밥상 검증의 大반전




본보 김배중 기자가 21, 22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조선시대 임금밥상(왼쪽 사진)과 노비밥상(오른쪽 사진)을 먹고 있다. 찬이 많아 열량이 높은 임금밥상은 먹는 즐거움을, 찬이 적지만 열량이 적당한 노비밥상은 알고 보면 ‘웰빙 밥상’의 즐거움을 준다. 장소 및 음식 협찬 한국의집. 장승윤 tomato99@donga.com·전영한 기자

《 “이거 완전 노비 밥 아냐!”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대전의 한 초등학교 급식 사진이 대중의 공분을 샀다. 식판에 담긴 한 주먹도 안 되는 밥, 건더기 없는 국, 풀만 있는 반찬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회사원 김모 씨(42)는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옛날 노비들도 이보단 잘 먹었을 것” 이라며 한탄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옛 노비밥상은 요즘 부실 급식처럼 형편없었을까. 대척점의 임금 수라상은 ‘행복 밥상’이었을까.  한국문화재재단 산하 한식당인 ‘한국의 집’의 도움을 받아 노비밥상(21일)과 임금밥상(22일)을 직접 검증해 보기로 했다. 》


○ 임금밥상: 진수성찬 이면의 숨겨진 칼날


임금의 용포(龍袍)를 입고 의연하게 수라상 앞에 앉았지만 상 위 음식에 압도당한다. 적미(赤米)가 들어간 홍반, 여름 제철 민어구이, 기름기 쏙 뺀 소 양지머리 편육, 껍질을 발라낸 명란젓 등…. 궁중음식연구원 고증대로 차린 12찬(饌) 임금 수라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국, 조치(찌개), 찜, 김치류, 전골(신선로) 등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작은 실제 임금 수라상의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다.

“임금처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라고 조언해준 한국의집 김춘배 조리부팀장의 말에도 급히 이곳저곳에 손이 간다. 식사 후 숭늉 한 사발, 오미자차와 다과를 먹고 나서야 한 시간여 임금밥상의 긴 여정이 끝난다. 최고 주방장의 손맛, 최고 육류 해산물 식재료가 골고루 섞인 수라상. ‘맛있다, 꿈같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 때쯤 한 음식사학자의 한마디가 머리를 울린다. “다 드셨어요? 그렇게 먹다 오래 못 삽니다.”

성인 남성 하루 권장 섭취량은 약 2400∼2500Cal. 이날 수라상의 열량을 계산해 보니 약 3300Cal. 한 끼 식사에 하루치를 훌쩍 넘었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육식을 즐기던 대식가인 세종은 당뇨 등 합병증으로 고생했고 잡곡밥 위주로 소식(小食)하던 영조가 장수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수라상의 푸짐함은 상징적 의미로 (왕들이) 대체로 상을 다 비우지 않고 내렸다”고 말했다.

○ 노비밥상: 현지 제철 재료 위주의 ‘웰빙 밥상’

전날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콩 옥수수 보리쌀이 섞인 고봉의 잡곡밥과 국, 채소 위주의 단출한 노비밥상. 고기 하나 없는 밥상에 한숨이 나온다. 농구공 절반만 한 크기의 두레박으로 된 밥그릇 크기 하나만큼은 눈에 번쩍 띈다. 된장국과 겉절이를 곁들인 식사 시간은 약 15분. 오늘날 밥 한 공기보다 2∼3배 많은 밥 양에 후반 속도가 처졌을 뿐, 정량이었다면 10분 안에 먹고도 남을 것같이 별 볼 일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노비밥상을 지금 ‘노비 밥’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차경희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교수는 “식물 위주지만 콩에서 단백질, 옥수수에서 필수지방산, 채소로부터 비타민을 얻을 수 있는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단”이라며 “요즘 말로 제철 ‘웰빙 밥상’”이라고 말했다.

이날 먹은 노비밥상 열량은 대략 900Cal. 임금밥상보다 한 끼로 적당하고 양만 줄인다면 다이어트 밥상도 될 만하다. 밥이 고봉인 이유는 많이 먹어야 고기, 생선 한 조각에 있는 만큼의 영양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 차 교수는 “조선 평민 이하의 평균 연령이 약 35세였는데 이는 먹거리보다 높은 영유아 사망률, 낮은 의료 혜택과 결부된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던 엄격한 계급사회. 그러나 노비도 칼로리는 낮지만 제철 웰빙 음식을 먹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판’ 식사를 마치고 나서며 다시 부실 급식이 심심찮게 등장할 현실을 맞닥뜨릴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씁쓸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