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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톡톡]야행 끝에 요지경을 본다

입력 | 2016-07-15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나이트쿠스(nightcus).’ 밤에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2002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들어간 단어죠. 그만큼 밤에 활동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 생계를 짊어진 가장, 청춘을 불태우며 노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올빼미족’에 교통량도 늘어

“낮에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야간에는 119를 찾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밤에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여 보지만 깊이 잠들지는 않습니다. 화재나 구조출동 벨이 울리면 빨리 가려고 서두르다 발목을 삐는 일도 있습니다. 식당에서도 벨소리가 울리면 괜히 놀라기도 하죠.”―은소민 씨(32·신당119안전센터 구급대원)

“밤에 근무가 많다 보니 일반 직장인들과 생활패턴이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연애하기도 힘들죠. 그렇다 보니 오히려 병원 내부에서 인간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합니다. 결혼도 교대근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병원 사람과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같은 간호사와 결혼했답니다.”―이병걸 씨(33·세브란스병원 응급실 간호사)

“새벽 3, 4시까지 일을 할 때가 많아요. 통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는데 왔다 갔다 길에서 3시간을 허비해야 하죠. 그래서 그냥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작업하곤 합니다. 정말 바빠서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야식도 안 시켜 먹고 일만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박현주 씨(25·디자이너)

“대한극장 옆에 애견센터가 많아요. 거기도 일이 늦게 끝나는데 낮에 바쁘니까 생일파티를 못 했다가 새벽에 저희 가게에 와서 케이크 놓고 축하 파티를 할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늦게 오시는 손님들은 영화감독이나 애견센터 직원, 새벽에 인쇄 작업하는 분이 대부분입니다.”―전성순 씨(45·서울 충무로 진양상가 곰장어집 사장)

“전국 도로의 야간 교통량이 늘었습니다. 통계를 낼 때 야간 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를 말하는데, 지난해 야간 교통량은 5년 전인 2010년에 비해
4.2% 증가했습니다. 전체 차량 등록대수가 늘어 야간 교통량이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박현석 씨(42·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


기다리는 사람들


“나이키 조던 시리즈를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이틀까지도 버텨 봤어요. 단순히 신발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조던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하죠.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을 갈 때에는 같이 기다리는 분들이 대신 기다려 주기도 합니다. 물티슈를 이용해 간단히 몸을 씻기도 하고요.”―서원 씨(28·회사원)

“신화 팬이었던 중학교 3학년 때 대구 동성로에서 에릭 사인회가 열렸어요. 전날 밤부터 동네 애들이 종이상자를 주워 와서 길 한가운데 깔고 앉았죠. 거기 앉아서 컵라면 먹고 팬들끼리 다 같이 신화 노래 틀어 놓고 따라 부르며 밤을 새웠습니다.”―이수지 씨(25·취업준비생)

“새로 출시되는 아이폰6S의 첫 번째 구매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날 오전 8시 30분부터 명동 프리스비 앞에 캠핑의자를 갖고 가서 대기했어요. 너무 심심해서 두 번째 대기자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오더라고요. 출시 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죠.”―오원택 씨(30·잡지사 에디터)


공부하는 사람들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서 마음이 급해요.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다 나와요. 엄마가 불안한지 데리러 나오세요. 고등학교 3학년이 5시간 이상 자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저 외에 다른 친구들도 다들 잠을 확 줄입니다. 저희 반에도 독서실을 안 다니는 애들이 없더라고요.”―김소미 양(17·고교생)

“대학교 미생물 실험실에서는 실험 결과를 기다리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예사죠. 밤사이 세포가 자라거나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자라야 원하는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워낙 공부할 양이 많아서 밤새우는 경우가 흔한데 새벽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중간에 실험실에 가서 확인하고 오곤 해요.”―전수진 씨(23·대학생)

“전공이 의상학인데 과제를 하다 보면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요. 그때마다 카페에서 케이크를 한 조각씩 사왔어요. 기운 내자고 다 같이 한 조각씩 먹으려고요. 작업하다 출출해지면 또 야식을 시켜 먹곤 해요. 다들 피곤해서 작업하다가 옷핀에 찔리고 다치는 일도 많지만 모두 소소한 재미죠.”―김현재 씨(25·대학생)


새벽장을 보는 사람들

“청량리 도매시장에 오전 3시 정도에 도착했어요. 지금이 5시 15분이니 5시 30분 정도에 가게를 열겠네요. 가게는 오후 7시까지 여니까 잠을 별로 못 자죠. 이렇게 일한 지 한 40년 됐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일 못 해요. 재미로 한다고 생각해야죠.”―조대권 씨(66·서울 수유재래시장 야채가게 사장)

“중국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제가 살던 고향은 다들 집에 일찍 들어가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은 새벽에도 안전하고 나와서 노는 사람도 많아 늦게 들어가도 괜찮죠. 곱창이나 삼겹살, 닭발구이 등을 먹고 마음에 드는 코트를 구입하기도 했어요. 청춘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 스트레스도 풀리죠.”―유학비 씨(29·핸드백 브랜드 직원)

“미국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정말 동대문 야간시장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수준이에요. 밤에 와서 야식도 사 먹고 혼자 윈도 쇼핑을 하며 뭐가 지금 유행하는지 살펴보기도 해요. 야간 시장 둘러보고 내일 첫차를 타고 집에 가거나 걸어서 남대문시장에 가보려고요. 남대문시장에 가면 손녀 줄 예쁜 옷을 살 거예요.”―이승연 씨(58·주부)

노는 사람들

“술 먹고 통금 시간이 지나 기숙사에 들어가면 벌점을 받거든요. 기숙사가 열리는 오전 5시까지 밖에서 놀며 밤을 새우곤 합니다. 한창 놀다가 기숙사 창문이 열려 있는 걸 발견하면 같이 놀던 친구들끼리 창문에 몸을 끼워 넣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몸집 큰 친구가 창문에 낀 모습을 보고 실컷 웃기도 했죠.”―엄지이 씨(22·대학생)

“남자 친구랑 헤어진 뒤 저를 위로해 주겠다며 친구가 불러냈어요. 둘이 맥주를 준비해 동대문 영화관에서 새벽 내내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여주는 ‘무비올나이트’로 영화를 봤어요. 중간에 잠깐 졸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는 내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서 좋았어요.”―이하연 씨(27·변호사)

“야간에 아파트단지 구석에서 술 먹고 밤늦게까지 고성방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거의 다 고등학생이에요. 술 먹을 때 담배 피우는 애들도 있는데, 보니까 요즘은 여학생이 많더라고요. 남학생들과 함께 피우는데 할 말이 없죠. 장난치는 고등학생들도 있는데 밤에 1층 문 두드리고 도망가는 아이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런 애들 잡아서 학교에 연락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는 각서도 받고 그러죠.”―김모 씨(73·아파트 경비원)

“아프리카TV라는 곳에서 리듬게임 방송을 했어요. 팬도 많고 시청 순위도 꽤 높았어요. 방송을 하는 게 너무 재미가 있어서 학교 갔다 오면 PC방에서 밤새우며 꾸준히 했죠. 나중에는 저를 따라서 아프리카TV 방송을 PC방에서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생겨나기도 했죠.”―최예랑 씨(30·중국어 번역 프리랜서)

“작년 1월에 친구와 새벽기차를 탔어요. 밤바다를 가기 위해서였죠. 골목길에서 야경을 내려다 보니 마치 별바다에 떠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해가 뜨기까지 한 시간은 걸리더군요. 정말 추워서 어그부츠 신고 재킷 입고 담요까지 몸에 둘둘 말고 있었어요.”―문소영 씨(23·대학생)
 
오피니언팀 종합·조혜리 인턴기자 성균관대 의상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