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인 줄 알았어. 개미가 들어가면 한 달은 헤매겠다.”
직장인 김 모 씨(30)는 최근 반바지를 입고 모임에 갔다가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이런 농담에 상처를 받았다. 그는 “BB크림도 바르고 양말 하나에도 신경 쓸 정도로 미용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데 다리털 때문에 놀림을 당할 줄 몰랐다”며 “그렇다고 해서 매끈하게 미는 것도 창피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김 씨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레그트리머(다리털 정리 면도기)’를 소개받았다. 다리털을 완전히 밀지 않으면서도 숱만 적당히 골라낼 수 있는 기구다. 그는 레그트리머를 이용해 2주마다 다리털을 밀고 있다. 김 씨는 “신세계를 봤다. 요즘 자신감 있게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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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레그트리머다. 올리브영의 올해 2분기(4~6월) 이 제품의 판매량은 1분기(1~3월)의 12배에 이른다. 옷이 얇아지는 여름철에 가슴의 중요 부위가 비치는 것을 가려주는 니플밴드의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6월 니플밴드의 판매량은 5월 대비 179% 늘었다. 이 기간 눈썹을 다듬는 남성용 눈썹칼의 판매량은 170% 증가했으며 남성용 프라이머는 73% 뛰었다. 11번가에서는 6월 제모용품과 데오드란트 등 남성 관련 미용 제품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했다.
이에 따라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09년 6억2350만 달러(약 7155억 원) 규모였던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14년 10억2990만 달러(약 1조1818억 원)로 62.8% 성장했다. 2020년에는 15억 달러(약 1조7213억 원)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용 용품까지 포함한다면 시장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는 것이 업체들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여미족(도시에 사는 젊은·남성)을 중심으로 남성 미용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기초화장을 하면 색조화장으로 가는 것처럼 미용에 눈을 뜬 남성들이 조금 더 섬세하게 자기 관리를 시작한 것”이라며 “외모가 경쟁력이 되면서 치열하게 관리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