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마크 해던 ‘부두가 무너진다’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2003년 발표한 첫 성인물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다.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에 걸린 15세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렸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이를 원작으로 만든 연극도 사랑받았다. 해던은 이 작품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휘트브레드상(코스타상의 전신)을 받았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부두가…’는 해던의 첫 단편 소설집이다. 아홉 편의 단편은 죽음, 이별, 파괴, 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Wodwo’(‘The Wild Man’을 의미하는 말)는 어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모 집에 모인 세 명의 자녀와 각자의 배우자, 아들, 딸이 식사를 하려는데 방문객이 찾아온다.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들 개빈은 무언가에 홀린 듯 총으로 방문객을 쏘아 버린다. 피투성이가 돼 죽던 방문객은 잠시 후 유유히 일어나더니 개빈에게 “일 년 뒤에는 내가 당신을 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 그 후 개빈에게 비극이 닥친다. 잘나가는 방송 진행자였던 그가 어떻게 노숙인으로 몰락하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헤어지는 가족의 이야기가 담담히 펼쳐진다.
궁전에 갇혀 순진하게만 살아온 공주가 야만인의 침략으로 가족을 잃고, 자신마저 서서히 야만인으로 변해가는 ‘섬’이나 심한 비만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고 발가락이 썩어가는 남자 버니와 그를 살리기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던 애인의 이야기인 ‘버니’ 등 어두운 상황을 다뤘다.
해던은 이 단편집으로 선데이타임스가 주관하는 EFG 프라이빗 뱅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인디펜던트와 가디언은 앞다퉈 뛰어난 문학성을 칭찬했다.
해던이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이나 가족의 해체에 대한 글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출간한 ‘소문난 하루’는 자신이 암으로 죽어간다고 착각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붕괴되는 모습을 그렸고 2012년 발표한 ‘빨간 집’은 가족 휴가 중 일어난 참사로 인해 우리 모두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그렸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