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국제부 차장
트럼프의 발언 통로는 트위터다. 그는 900만 팔로어에게 “급진적 이슬람 테러에 대해 내가 옳았다고 축하해줘 고맙다”고 했다. 많이 죽고 많이 다쳤는데 ‘축하’라니. “올랜도에서 벌어진 일은 시작일 뿐”이라고 겁준 뒤 바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민자를 막아야 한다니까.”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해선 “우리 좀 안전해지자. 힐러리가 대통령 되면 큰일 난다”고, 눈엣가시였을 힐러리의 백기사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겐 “우리 리더십은 약하다”며 “사퇴하라”고 윽박질렀다.
미국판 ‘북풍(北風)’이라고 해야 할까. 9·11을 기억하는 미국 유권자들은 테러 공포에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보수당 후보에게 꼭 유리할 것 같진 않다. 트럼프가 입을 열수록 무지도 드러나고 있다. 그는 반(反)지성주의자다. 우치다 다쓰루의 신간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이마)에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나온다.
둘째, 분풀이 대상을 콕 집어 단정적으로 얘기한다. 트럼프는 “미국이 위험한 건 불법 이민자들 때문”이고, “미국이 가난한 건 중국이 돼지저금통 털듯 미국을 털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게 다 유대인 때문이야’ ‘이게 다 ○○도 놈들 때문이야’ 하는 식이다. 물론 테러나 경제난 같은 복잡다단한 문제의 원인이 하나일 리 없고 이렇게 쉽게 풀릴 수도 없다.
셋째, 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문구를 무한 반복하는 인내력이다. 트럼프 하면 똑같은 슈트에 똑같은 헤어스타일, 특유의 입 모양과 제스처가 떠오른다. “무슬림은 위험하다” “장벽을 세우면 된다”는 말을 하고 또 한다. 새로운 어휘를 구사하거나 새 논리를 펴지 않는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을 관통하는 본질이 반(反)시간성이다. 지성이란 앎의 쇄신이다. 여기엔 시간이 필수다. 반지성주의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거짓임이 들통날 얘기를 되풀이하면서 지금 눈앞의 상대를 압도하는 일에 열중한다. 그래서 반지성주의의 적(敵)은 시간이다.
장사꾼들에게 불황은 한몫 챙길 기회다. 기업인 출신 트럼프에겐 국가적 비극이 표를 끌어모을 정치적 찬스로 보이는 모양이다. 저널리스트 리처드 로비어는 저서 ‘상원의원 조 매카시’에서 매카시를 ‘공산주의라는 유전을 파내 석유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탐사꾼’이라고 했다. ‘공산주의’를 ‘반이민주의’로 바꾸면 이 정치적 투기꾼은 딱 트럼프다.
이진영 국제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