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체 해소-쓰레기 처리 등 ‘생활밀착’ 공약으로 지지율 1위 佛-스페인서도 ‘생활정치 女風’… 부패한 ‘큰정치’ 불신 편승 약진 “인기 있지만 능력 의문” 비판도
5일 이탈리아 1300개 도시에서 치러지는 시장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일곱 살 아들을 둔 정치 신예 여성 변호사에게 쏠려 있다. 그가 당선되면 서양 문명의 중심,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된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당인 ‘오성(5星)운동’ 소속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37·사진)는 여당인 민주당 소속의 로베르토 자케티 후보와 임신 상태로 출마한 또 다른 여성 후보자 조르지아 멜로니를 여유 있게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라지 후보는 마테오 렌치 총리가 2024년 로마 올림픽 유치를 신청한 데 대해서도 “범죄 행위”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데 올림픽 같은 업적 쌓기용 대형 이벤트 유치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생활 정치를 내건 여풍(女風)이 거세다.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최근 최초의 여성 시장이 잇달아 당선됐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마누엘라 카르메나 시장도 ‘작은 정치’를 구호로 매일 아침 마드리드 북쪽 외곽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개똥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작은 정치를 내세운 여성 후보들이 약진하는 배경에는 ‘큰 정치’를 하는 부패한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라지 후보도 이탈리아 정계의 뿌리 깊은 부패에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지난해 전임 시장인 이냐치오 마리노는 공금으로 개인 밥값을 냈다는 의혹에 휘말려 사임했다. 마피아 범죄 조직과 로마 시의 결탁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라지 후보의 소속 정당인 ‘오성운동’도 기존 정당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만든 온라인 중심의 대안 정당이다. ‘오성’은 깨끗한 물, 지속가능한 교통 체계, 지속가능한 개발, 인터넷에 접속할 권리, 생태주의를 뜻한다.
여성 시장들의 작은 정치 실험을 불안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라지 후보는 “재사용이 가능한 기저귀를 쓰면 인센티브를 주겠다” “로마에 물물교환 카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탈리아가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미안하다. 그 이슈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해 무지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