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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비키니]이승엽도 박병호도 “컵 달린 배트가 좋아”

입력 | 2016-06-01 03:00:00

“더 가볍게” 머리 끝부분 움푹 파내… 타자들 70~80%가 선호
ML 마지막 4할 타자 윌리엄스도… “내가 뛸땐 왜 없었나” 한탄했다죠




프로야구 타자들 야구방망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선수마다 방망이 머리끝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 이승엽(맨위 사진)이나 미네소타 박병호(가운데 사진)는 컵 모양으로 끝을 판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방망이에 컵을 파면 무게를 최대 30g까지 줄일 수 있다. 반면 두산 김재환은 볼록한 모양이다. 끝부분을 평평하게 일자로 깎는 선수도 있다. 동아일보DB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실제로는 비틀스 노래 가사 중 의성어 ‘blah’를 ‘bra’로 바꾼 것). 그렇다면 저는 프로야구 타자들 인생은 “방망이 끝을 타고 흐른다”고 주장하렵니다. 브래지어와 야구방망이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거든요. 바로 ‘컵’이 있다는 것.

○ 컵 파기


일단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의 품격을 감안해 브래지어 컵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야구방망이에 무슨 컵이 있느냐고요? 삼성 이승엽(40)과 미네소타 박병호(30)가 쓰는 방망이 사진을 보면 제가 말한 컵이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저렇게 머리 부분을 파낸 방망이를 영어로 ‘cupped bat’ 또는 ‘cup end bat’라고 부릅니다. 사회인 야구를 하시는 독자나 올드팬들은 가리반(がり版)이라는 일본식 표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네요.

야구 규칙은 한국 공무원들보다 더 규제를 사랑합니다. 선수들이 아무렇게나 방망이를 파두는 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야구 규칙 1.10(b)은 “방망이의 끝부분을 도려낼 때는 깊이는 1인치(약 2.5cm) 이하, 지름은 1∼2인치(약 2.5∼5.1cm) 이내로 해야 하며, 움푹하게 파낸 단면은 둥글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저 정도 파내는 건 괜찮다는 뜻입니다.

타자 중 70∼80%는 이렇게 컵이 있는 방망이를 선호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야 똑같은 재질로 방망이를 만들어도 무게가 적게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건 더 무거운, 그래서 더 단단한 목재로 방망이를 만들어도 타자가 원하는 무게를 맞춰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방망이 무게가 20g 늘어나면 몸무게를 10kg 이상 (물론 근육으로) 늘려야 원래 배트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이런 방망이가 얼마나 탐났는지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보스턴)는 “왜 내가 뛰던 시절에는 이런 방망이가 없었느냐”고 한탄했을 정도입니다. 윌리엄스가 생애 마지막으로 타율 0.400을 넘긴 건 1941년(0.406)이었습니다. 이 방망이는 1970년대 중반이 돼서야 메이저리그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방망이는 서로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게 당연한 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명포수 출신 조니 벤치(69)는 자기가 메이저리그에서 컵 방망이를 처음 휘둘렀다고 주장하고 루 브록(77)은 일본 방문 경기 때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76)에게서 선물을 받아 미국에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아직도 논란 중입니다.

이렇게 머리를 깎아내면 방망이가 약해지지 않을까요? 여러 실험 결과 이렇게 컵을 만들어도 공을 때렸을 때 가장 멀리 나가는 지점인 ‘스위트 스폿’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이렇게 방망이 끝을 파내면 방망이가 전체적으로 균형이 더 잘 맞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 손잡이도 진화 중

손잡이가 평범한 일반 방망이.

최근에는 방망이 반대쪽 끝 방향에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손잡이 모양을 바꾸는 겁니다. 방망이 끝에 달린 둥근 손잡이를 노브(knob)라고 합니다. 보통은 노브가 방망이 끝을 가로막고 있는 형태로 돼 있습니다. 노브는 방망이를 쥔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니까요.

도끼형 손잡이 방망이.

요즘에는 이 노브를 대각선 형태로 만든 ‘도끼형 손잡이’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렇게 끝을 만들면 방망이를 더 세게 쥘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실수로 방망이를 놓치는 일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거포 중에는 노브를 거머쥐듯이 잡고 공을 치는 타자들이 있는데 그런 선수들이 이 방망이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메이저리그 더스틴 페드로이아(33·보스턴)가 도끼형 손잡이 방망이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선수로 꼽힙니다.

얼핏 보면 모두가 똑같은 방망이를 들고 경기를 치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길이와 무게는 물론이고 이렇게 방망이 양 끝도 다릅니다. 타율을 1리라도 올릴 수만 있다면 어떤 시도든 다 해보는 거겠죠. 타자들 인생은 정말 방망이를 타고 흐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