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종이학 직접 접어 ‘피폭 日소녀’ 추모한 오바마

입력 | 2016-05-30 03:00:00

히로시마 자료관 방문때 깜짝선물… 놀란 아베 “직접 접었나” 묻기도
백악관 “아베가 진주만 올 차례”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손수 접어 선물한 종이학. 아사히신문 제공

27일 오후 5시 반. 일본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 자료관을 둘러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이 걸음을 멈췄다.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다 12세에 숨진 소녀 사사키 사다코(佐¤木貞子)의 사진 앞에서였다.

소녀는 두 살 때 원폭 투하 지점에서 1.6km 떨어진 집에서 피폭됐다. 목숨은 건졌지만 9년 후 온몸이 붓고 붉은 반점이 생겼다. 의사는 백혈병 진단을 내리며 “1년 이상 살 수 없다”고 했다. 문병 온 친구가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자 소녀는 종이학을 964마리까지 접은 뒤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일본 내에서는 히로시마 비극의 상징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과 함께 전시된 종이학을 지켜보다 옆에 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오늘 종이학을 가져왔습니다.” 수행원이 종이학을 가져오자 그는 마중 나온 초중학생 2명에게 한 마리씩 건넸다. 놀란 아베 총리가 “직접 접은 것이냐”고 묻자 “약간 도움을 받았지만 직접 접었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한 후 종이학 두 마리를 추가로 방명록 위에 얹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깜짝 선물’은 미국이 히로시마 방문을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했는지를 보여준다. 양국 정부는 이달 초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결정한 후 그의 동선과 헌화 방식 등을 놓고 막판까지 조율을 거듭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을 결정한 것은 6일”이라며 당시 아베 총리가 러시아 방문 중이어서 8일 일본 측에 의사를 전달했다고 29일 보도했다. 미국 내의 반발,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 한국과 중국의 반응 등을 마지막 순간까지 고려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미국 측이 “행사를 엄숙하게 진행하고 싶다”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지난달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공원을 찾았을 때 학생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행사도 오바마 방문 때는 뺐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함께 헌화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미국 측은 ‘개별적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한편 백악관은 히로시마 방문의 답방 형식으로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을 압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7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아베 총리가 12월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할 경우 환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진주만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는 대선 직후인 12월 7일 진주만에서 일본군 공습 75주년 추모행사를 연다.

아베 총리는 25일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진주만 방문 가능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선 아베 총리가 미국의 새 정권과 역대 최상의 미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진주만 방문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