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늙지 않는다/현기영 지음/260쪽·1만2000원/다산책방
현기영 씨(75)의 에세이는 이런 마음의 부담을 좀 덜어줄 듯싶다. 현 씨는 제주도4·3사건을 소재로 삼은 ‘순이 삼촌’, 조선 말기 제주의 민란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 등의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다. 날 선 역사의식을 소설화해 온 그가 들려주는 노년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편안하고 넉넉하다. 그 자신도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싸우는 동안 증오의 정서가 필요했고, 증오가 가득한 가슴으로는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속이 느끼했는데, 이제 나는 그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서도, 그것을 노래한 사랑의 시에 대해서도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한다.”
나이 들면 ‘꼰대’가 되리라는 편견에 대해 현 씨는 이 에세이를 통해 여유 있게 손을 내젓는다. 그는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적지 않은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라면서 “이전 것들에 너무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흔쾌히 포기해버리는 것, 욕망의 크기를 대폭 줄이는 것”이라고 적는다. 포기했다는 게 무력해졌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작가는 그 대신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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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씨의 인식이 궁극적으로 모이는 부분은 ‘작가의 임무란 무엇인가’다. “글 쓰는 자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각성이 생겼다.” 무엇보다 그렇게 고백하는 작가의 노년이 아름답게 여겨짐은 물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