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면 외제차 탄다” 사기 가담 “아픈 표정으로…” 환자 연기수업도
“두 팔을 이렇게 위로 올려보세요.”
병원 브로커 이모 씨(37)는 팔을 올리며 말했다. 맞은편 남자는 이 씨를 따라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이 씨는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며 다시 시범을 보였다. 그는 “수술한 팔은 올리지 말고 ‘너무 아파서…’라고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픈 척하는 연기 교육을 받은 남자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비역 정모 씨(26)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멋진 사나이로 그려졌던 특전사 전현직 일부가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국방부 조사본부, 금융감독원과 함께 특전사 보험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주범인 특전사 예비역 부사관 황모 씨(26)를 구속하고 특전사 예비역이 포함된 보험모집인과 병원 브로커 2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황 씨 등은 2012년 12월부터 현역 특전사 대원 등에게 5∼10개 보험에 가입하게 한 뒤 허위 영구후유장해 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부당 수령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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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전역한 황 씨는 고급 수입차를 타고 후배 특전사 대원을 찾아가 “군 복무 중 부상 위험이 높은데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금으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형처럼 외제차를 탈 수 있다”며 가입을 권유했다. 황 씨도 특전사 선배에게 배운 방법으로 보험금 1400만 원을 받고 국가유공자까지 됐다. 황 씨의 후배들은 의리와 돈 때문에 2, 3개월 사이 1인당 5∼10개 보험에 가입했다.
‘군(軍) 테크’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던 황 씨는 경기 김포시에 보험대리점을 차렸다. 특전사 동기와 후배 15명을 보험모집인과 병원 브로커로 일하게 했다. 이들도 황 씨와 같은 방식으로 보험금을 타냈다. 경찰 관계자는 “황 씨의 지시 아래 특전사 전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보험모집에 나섰다”고 전했다.
보험에 가입한 특전사 대원들은 황 씨 일당의 지시에 따라 부대에서 공무상병인증서를 발급받고 군 병원이나 일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병원 브로커를 통해 유명 대학병원 등 병원 22곳의 의사 23명에게서 영구후유장해 진단서를 받았다. 의사와 원무과장은 진단서 발급 대가로 건당 30만∼50만 원을 받았다.
황 씨는 특전사를 넘어 공군 해군으로 확장해 보험사기에 나섰다. 수사 대상에 오른 전현직 군인 531명은 평균 8.7개 보험에 가입해 3300만 원을 수령했다. 최고액은 2억1400만 원이다. 이들은 보험금을 받으면 15∼20%를 황 씨 일당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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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