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작가 류인 유작전 ‘경계와 사이’
류인 작가가 숨지기 2년 전인 1997년 만든 타이틀 미상의 유작.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저는 그 작가 작품 보기가 무서워서요. 그냥 혼자 가세요.”
병마에 시달리다 43세에 요절한 류 씨가 사망 2년 전에 완성한 제목 미상의 한 작품은 나무뿌리에 가슴 복판을 관통당한 사내의 모습을 표현했다. 나무 밑에 묻힌 시체가 조금씩 자라난 뿌리에 결국 가슴이 뻥 뚫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태어나 살아가다 보니 나무뿌리가 몸의 일부임을 뒤늦게 깨닫게 돼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두려워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적극적으로 이입하며 바라보기는 꺼려진다.
팔이 잘려나간 채 시멘트 하수도관 위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남자가 문득 관람객을 돌아보며 팔 잘린 이유를 담담히 설명할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내려친 쇠뭉치에 짜부라진 얼굴, 숨통이 막힌 듯 단단히 붙들린 목 줄기, 금세 바스러질 듯 녹슨 채로 늘어진 몸뚱이…. 차마 말로 옮기기 어려운 형상으로 쇠사슬에 목 매달린 남자도 있다.
힘은 명징하게 전해진다. 자신의 몸에서 떨칠 수 없는 아픔을, 왜곡하고 변형시킨 작품의 신체에 박아 넣은 흔적이 오롯하다. 오래 응시하기 괴로운 탓도 있었지만 마침 왁자지껄 박장대소하는 관람객 한 떼가 지하 전시실로 밀려들기에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려 빠져나왔다. 최소한 정숙을 부탁하는 표지 하나라도 자그맣게 붙여 놓는 편이, 작가의 분노와 관람객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될 거다. 02-541-570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