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기획전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 이땅에 새겨진 균열과 저항의 모습…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위트있게 표현
정정엽 작가의 유채화 ‘식사준비’(1995년).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 밖으로 뿔뿔이 빠져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정 씨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과 노동 문제를 주제 삼아 녹두, 완두, 붉은 팥을 재료로 독특한 이미지를 선보여 왔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결론부터 밝히면 가볼 만하다. 비가 시원하게 퍼부은 15일 오후 찾아간 덕도 있겠지만, 물리적 배치나 내용의 짜임새 모두 엉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작가별로 모으거나 연대순으로 나열하며 관람객을 공부시키듯 정리하려 들지 않은 덕이다. 진지한 이야기를 품은 작품 곁에는 살짝 힘을 뺀 위트를 드러낸 작품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는 이의 호흡을 적절하게 배려했다.
황재형 작가의 유채화 ‘탄광촌 가는 길’(1983년). 이달 초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 씨는 노동자의 삶을 구경꾼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화폭에 옮겼다.
함경아 작가의 설치작품 ‘오데사의 계단’(2007년). 국가권력의 폭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냈다.
2층 전시실 정윤석 작가의 12분 길이 영상작품 ‘별들의 고향’도 눈길을 끈다. 곁에 앉아 영상을 지켜보던 남성 관람객이 동행을 돌아보며 “야, 다른 나라 얘기 같다”고 말했다. 지존파, 삼풍백화점 붕괴 등 굵직한 사건 관련 이미지와 함께 중고교의 총검술 수업, ‘유신으로 번영하자’는 표어 등 이 나라의 생생한 현실이었던 과거 영상이 숨 가쁘게 교차한다.
기 부장은 “1980년대 리얼리즘 회화에 얽매이지 않고자 ‘민중미술’이라는 단어를 배제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현재의 작가도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발언한다. 미술을 매개로 삼은 사회운동은 지금도 당연히 유효하게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