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펑클 라이브러리’로 일컬어지는 이 온라인 독서비망록은 루소의 ‘고백록’부터 시작해 제임스 개빈의 ‘쳇 베이커’(한국어판 을유문화사),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까지 잡식성 광폭 독서의 경이로운 흔적이다. 고백록은 1968년에 처음 읽고 1983년에 다시 읽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는 1982년에 제1권, 1991년에 제2권을 읽었다.
조선 후기 문신 홍석주(1774∼1842)는 평생 읽은 책들을 분류하여 개요를 기록한 ‘홍씨독서록(洪氏讀書錄)’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나처럼 마구 읽어 요령을 얻지 못할까 염려하여’ 독서록을 쓰기 시작했고, ‘일찍이 읽어 감명받은 것과 대개는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한 책을 골라 제목을 나열하고 개요를 기록했다’.(‘역주 홍씨독서록’·이상용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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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는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쓴 일기이자 유고,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가 있다. 1989년 6월 18일 김현은 이렇게 적었다. ‘이제는 갈수록 긴 책들이 싫어진다. 짧고 맛있는 그런 책들이 마음을 끈다. 두껍기만 하고 읽고 나도 무엇을 읽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책들을 읽다가 맛좋은 짧은 책들을 발견하면 기쁘다. 바르트의 어떤 책들, 그리고 푸코의 ‘마그리트론’….’
학교 독후감 숙제 탓에 책과 멀어졌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학교생활기록부에 독서활동 상황을 기록한다. 그런 생활기록부가 대입 전형에서 중요해질수록, 자발적으로 솔직하고 즐겁게 쓴 독서비망록은 드물어질 법하다. 중국 명나라의 이탁오가 말했다. “성정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기르는 것이 바로 책 안에 있다.” 생활기록부 독서비망록이 자꾸만 성정을 불편하게 하고 정신을 위축시키는 요즘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