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서울’전
월간지 ‘디자인’의 전은경 편집장과 그래픽디자이너 원승락 씨가 작업한 ‘(아웃 오브) 포커스’. 기사를 통해 인터뷰한 그래픽디자이너들의 사진 72점을 모아 한 벽면에 걸었다. 얼굴과 인물정보 텍스트는 아크릴을 잘라 붙여 가렸다. 그럼에도 누구인지 짐작하게 하는 정보들이 사진 배경에 남겨짐을 보여준다. 일민미술관 제공
결론부터 쓰자면 두 염려 모두 괜한 오지랖이다. 5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 기획자로 초청된 그래픽디자이너 김형진 최성민 씨는 “이 전시가 최근 10년간의 그래픽디자인 ‘걸작선’처럼 여겨지지 않도록 경계했다. 그런 의도라면 책을 한 권 정리해 내거나 웹페이지를 만드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불쾌한 소외감을 안길 위험이 큰 전문용어나 관념어의 불친절한 나열, 무의미하고 안이한 디자인 결과물이나 카탈로그 무더기는 치워냈다. 전문 영역 밖 관람객이 가벼운 마음으로 정갈한 이미지 제안을 슥 훑어볼 수 있도록, 공간 여백을 넉넉히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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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무소 ‘설계회사’가 전시실 3개 층을 수직으로 관통하듯 설치한 ‘빌딩’. 콘크리트를 얇게 입힌 종이 103장을 쌓아올렸다. 기획자 최성민 씨는 “독립출판의 미심쩍은 성취가 허물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힌다”고 말했다.
편집자, 번역가, 시인으로 구성된 창작집단 ‘잠재문학실험실’은 텍스트 인쇄 디자인 작업 결과물 한 면의 일부 단어를 골라 임의로 조합해 ‘시’를 만들었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다다를 수 없는/그러길 바라는/기필코 불행해야 한다는/내가 앓는/가장 지독한 병이다….” 정색하고 꼼꼼히 들여다보며 나름의 의미를 짚어낼 수도, 이미지만 후루룩 살펴볼 수도 있다.
하지만 3층 전시실의 동영상 강의 연작 ‘걸작이로세!’와 네트워크 프로젝트 ‘스몰 월드: 그래픽 디자이너’는 약간의 의구심을 남긴다. 자연스러운 편향성을 시인하며 이어지던 전시 흐름이 자부심과 연대감의 또렷한 표출로 맺어진 것은 아쉽다. 전시를 관람한 대형 사립 미술관 관계자는 “스스로 비주류라 일컫지만 누구에게나 주류라고 받아들여지는 디자이너들이 자아를 대하는 가치관에서 묘한 균열이 읽혔다”고 말했다. 02-2020-2038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