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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통치권’에 무릎꿇은 집권당 國政 포기했나

입력 | 2016-03-24 00:00:00


20대 총선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둔 어젯밤까지 새누리당은 헌정사에 수치로 남을 ‘유승민 공천 미루기’ 행태를 이어갔다. 유 의원 지역구(대구 동을) 공천을 놓고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는 15일부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를 했다. 공관위는 어제도 결론을 미뤄 결국 유 의원을 탈당케 했다. 유 의원은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 권력이 나를 버려도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공천에 탈락한 의원들이 ‘친박(친박근혜) 패권주의’를 비난하며 탈당해 과반 의석도 흔들린다. 국민이 집권세력을 대신해 총선 후 국정 운영을 걱정해야 할 어이없는 상황이다.

공천이란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자를 추천하는 절차다. 그런데도 한 공천관리위원은 본보 기자에게 “유승민 공천은 통치권의 문제라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뜻은 지난해 6월 ‘배신의 정치’ 발언 때부터 확고했고, 당에서 거스를 수 없었다는 얘기다. 권위주의 시대에나 쓰였던 ‘통치권’이란 용어가 정당의 공천에 등장한 것은 정상이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에서 질질 끄는 바람에 대통령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돌아왔다”고 말했다니, 이런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없다.

그제 발표된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도 뜯어볼수록 한심하다.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 황진하 사무총장 등 실력자들이 ‘나눠 먹기’ 한 흔적이 역력하다. 세월호 유족을 향해 ‘시체장사’를 한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공유한 후보, 공관위원의 형수가 당선 안정권에 배정됐다. “김무성 죽여” 막말로 컷오프(공천 배제) 됐던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의 지역(인천 남을)에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공천했다. 윤 의원의 무소속 당선 후 복당을 노리는 ‘변종 전략공천’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19대 국회의원 임기는 5월 29일까지다. 총선 이후에도 46일간 존속한다. 대통령은 21일에도 “본인들의 정치를 위해 국민의 경제시계가 멈추지 않도록 해 달라”며 경제법안의 통과를 촉구한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수를 얻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상반기에는 법안 통과가 어렵게 됐다. 가뜩이나 여야의 극한 대립에 뛰쳐나간 비박(비박근혜)계의 반발까지 겹쳐 국정과 개혁입법은 수렁 속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 전 민주통합당은 과반의석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공천 과정의 잡음과 갈등으로 결국 실질적인 패배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4·13 심판’이 이번 공천에서 드러난 친박과 친노(친노무현)의 ‘적대적 독점 구조’를 깨는 정치 쇄신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