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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활]“장례식장 같은 한국 기업 임원실”

입력 | 2016-03-17 03:00:00


어느 대기업 상무 A 씨는 몇 년 전 부장 시절 임원 B 씨로부터 받은 폭언이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다. B 씨는 자신의 말에 A 씨가 다른 의견을 내자 욕설을 섞어가며 소리쳤다. “조직에서 살아남는 제1원칙이 뭔지 알아? 일 잘하는 것?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것도 무시할 순 없지만 상사(上司) 심기를 잘 살펴서 맞추는 게 첫째야. 그것도 모르고 임원 승진을 꿈꾸나?” A 씨는 며칠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충격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기업의 별’인 임원은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로 선망의 대상이지만 스트레스도 심하다. ‘임시 직원’의 약자(略字)라는 푸념도 한다. 실력과 덕망을 겸비한 사람도 많지만 심리적 압박감이 우월적 지위와 겹치면서 하급자들을 장기판의 졸(卒)로 여기는 분노조절 장애증후군의 임원도 적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의 기업인과 금융인을 다룬 책들을 읽어보면 선진국에서도 이런 임원들이 눈에 띄지만 한국의 기업 풍토는 더 심한 것 같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조직건강도(OHI) 분석기법을 활용해 국내 100개 기업 임직원 4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77%의 기업이 글로벌기업 평균보다 조직건강도가 낮았다. 국내 기업 임원으로 일했던 한 외국인은 이렇게 꼬집었다. “한국 기업의 임원실은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리더의 업무지시에 Why(왜)도, No(아니요)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을 보고 쉽게 개선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리조직인 기업을 동창회나 동호인 모임처럼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방적 지시와 비효율적 회의, 하급자에 대한 모욕과 폭언 같은 후진적 기업문화는 창의와 혁신을 갉아먹어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가로막는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피처폰급 기업운영 소프트웨어를 최신 스마트폰급으로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저성장 뉴노멀 시대 극복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건강한 기업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고경영자(CEO)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