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의 고전: 심청은 보았으나 길동은 끝내 보지 못한 것/이진경 지음/520쪽·2만2000원·글항아리
심청은 효녀였을까. 저자는 “아니다”고 말한다. ‘효(孝)’라는 절대적인 명령에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복종함으로써 명령의 황당함을 온몸으로 항의했다는 것. 용궁에서 살아났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순간 명령에 복종하던 심청은 죽었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난 심청은 자신이 따랐던 효가 맹목적인 효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홍길동은 체제에 철저히 순응한 인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병조판서까지 올랐지만 신분제를 철폐하지 않았다. 율도국을 세우고 왕이 됨으로써 신분제 사회의 정점에 선다. 홍길동이 원한 건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할 수 있는 지위일 뿐 이를 불가능하게 한 제도를 혁파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고전소설 사이사이에 녹아든 철학적 분석은 샐러드에 골고루 버무려진 드레싱 같다. 고전소설을 디테일하게 뜯어보는 재미도 적잖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창작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