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입양아 출신 장뱅상 플라세 프랑스 국가개혁장관
장뱅상 플라세 프랑스 국가개혁장관이 10일 파리 집무실에 기자가 들어서자 두 손을 내밀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10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5구 바빌론 가(街)에 있는 국가개혁장관 집무실. 지난달 11일 개각 때 입각한 장뱅상 플라세 장관(48)은 커다란 손을 내밀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빛이 강렬했다. 한국계 입양인 출신이 프랑스 장관이 된 것은 플뢰르 펠르랭 전 문화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장관집무실 주변 도로는 ‘주당 35시간 근무제’ 폐지를 뼈대로 한 정부 노동개혁안에 대한 반대 시위로 길이 꽉 막혔다. 플라세 장관은 “현재 젊은이들 4명 중 1명이 노동시장에서 소외돼 있는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며 “일자리는 기업이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 경쟁력 활성화를 위한 노동개혁 법안 통과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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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발간한 자서전 ‘내가 안 될 이유가 없지!’에는 변호사인 양아버지가 뿌리인 한국을 잊지 말라며 한국어를 배우라고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그는 ‘혹시나 한국으로 다시 보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왜 36년간 한국을 잊고 살았나.
“나와 같이 ‘버림의 기억’을 가진 사람은 받지 못한 사랑을 새로운 가족으로부터 받고 싶은 강한 의지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인보다 더욱 프랑스인이 됐을 수도 있다. 나를 따뜻하게 받아준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프랑스를 나는 열렬히 사랑했다. 넉 달 만에 프랑스어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한국과 화해했나.
“2011년 상원의원에 당선됐을 때 박흥신 전 주프랑스 대사가 관저로 초청했다. 3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요리를 맛봤다. 강렬한 느낌이었다. 박 대사의 따뜻한 환대와 인간적 믿음으로 한국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내고 인식을 바꾸게 됐다. 비빔밥을 좋아하는 나는 요즘 파리의 한식당 ‘우정’에 프랑스 의원들을 초대해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홍보대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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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정치는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프랑스인들에게 받은 것을 되돌려줄 수 있는 장관이 돼 기쁘다. 나는 야망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왔다. 프랑스인들은 개인적인 야망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나를 싫어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이런 야망이 없었다면 힘든 입양 경험을 가졌던 다른 아이들처럼 청소년기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2001년 유럽생태녹색당(EELV)에 가입한 그는 지난해 8월 녹색당이 집권 연정을 탈퇴하고 급진 좌파와 연대하자 녹색당을 탈당하고 환경민주당(UDE)을 창당했다. 그는 최근 중도주의자를 자처하며 좌우를 아우르는 정계 개편을 주장해 프랑스 정계에 돌풍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좌파 녹색당 출신 정치인으로서 왜 중도주의, 실용주의를 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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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세 장관은 2011년 한국 정부 초대로 방한한 이후 6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에 갈 때마다 한국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정확성, 전통 문화와 자연을 존중하면서도 세련된 현대 문화, 첨단 테크놀로지와 경제 발전에 놀라움과 존경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플라세 장관은 “어릴 적 지내던 보육원을 방문하니 잊고 지내던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며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다이어트로 몸무게를 14kg이나 줄였다. 자신의 다이어트에 대해 프랑스 TV 카날플뤼스 토크쇼에서 ‘기후 온난화 투쟁에 대한 개인적인 기여’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다이어트에 대해 “외동딸 마틸드(3)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 딸에게 균형 잡힌 식사의 모범을 보여주고 싶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취업난과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현실에 절망해 ‘헬조선’이나 ‘흙수저’라는 말로 자조(自嘲)하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한국의 젊은이들만 겪는 고민이 아닙니다. 프랑스와 유럽 젊은층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내가 받는 교육이 올바른 것인지, 노동시장이 개방되는데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겐 물질적인 고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함께 나누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열정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