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경제부 차장
현대상선은 최근 몇 년간 해운업계에 몰아닥친 불황의 파도를 맞고 침몰 중이다. 지난해 2535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1년부터 5년간 내리 적자다. 올해 만기(4월, 7월)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3600억 원. 내년부터는 부채부담이 1조 원으로 늘어난다.
현대그룹은 20개 계열사가 있지만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리는 구조다. 국내 엘리베이터업계 1위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캐시 카우(자금줄)’ 역할을 한다. 지난해 매출액 1조4487억 원, 영업이익 1565억 원으로 10%대의 영업이익률을 거두는 등 10년 넘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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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고민에 빠졌다. 놔두자니 회사가 망할 것 같고, 도와주자니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고….
급기야 채권단은 현대상선에 최후통첩을 했다. 자구안(自救案)을 들고 오라는 것이다. 자구안이 미흡하면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현대증권을 매각하고 현대상선마저 잃으면 현대그룹의 존재는 유명무실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달 3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하고 이달 3일 현대상선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하는 등 강력한 경영 정상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채권단이 꼽는 최우선 과제는 용선료(傭船料) 인하. 용선료는 배를 빌리는 대가로 선주에게 지불하는 비용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선박 125척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85척을 해외에서 빌려 쓴다. 용선료는 10∼15년의 장기계약으로 이뤄진다. 현대상선은 이미 오래전 맺어 놓은 장기계약 용선료 때문에 한 해 2조 원을 쓴다. 호황이면 상관없지만 불황에 연간 2조 원의 용선료는 치명적이다.
채권단은 현재의 구조에서 현대상선에 추가 지원을 해도 그 돈이 해외 선주로 흘러 들어간다고 보고 있다. 이동걸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목숨 건 협상을 해야 한다”며 용선료 인하 노력을 압박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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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측 논리는 이렇다. “지금 해운업 시황이 워낙 안 좋아서 싼 배들이 널려 있어. 근데 우리가 예전에 너희와 비싼 계약을 맺는 바람에 용선료를 많이 내고 있잖아. 만약 너희가 안 깎아주면 우리 회사가 법정관리로 들어가. 그러면 채무 동결로 너희한테 배를 돌려줘야 해. 너희도 배가 남아돌잖아. 그러니까 딱 잘라 절반으로 깎아주고 계속 용선료 받는 게 신상에 좋을걸?”
대북경협 사업을 하는 현대그룹은 개성공단 폐쇄로 악재가 겹쳐 있다. 용선료 협상이 실패하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소 떼 방북’을 할 당시 현대그룹은 계열사 수 62개에 자산 73조 원으로 재계 1위였다. 그랬던 기업이 1조 원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03년 남편 사별 이후 현대그룹을 떠안은 현정은 회장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다.
김상수 경제부 차장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