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택·정책사회부
교과서를 만들면서 여론 홍보전에 나서는 점, 예상치 못했던 재난이나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예비비를 투입한 점, 그리고 그 금액이 편찬 비용의 절반에 달하는 점 모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돈으로 만든 TV 광고 중 일부는 과거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엉성하게 만드는 바람에 교과서에 유관순 열사가 빠진 것을 국정화의 이유로 제시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정화 홍보비가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여러 국회의원과 본보 등 언론들이 공개를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5월 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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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의 예비비 운영 전례를 살펴보면 교육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에 쓴 예비비 505억 원의 사용 명세를 보도자료로 홍보했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에 들어간 예비비 89억 원도 돈을 지급한 당일 명세를 공개했다.
교육부도 국정화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해온 점에 비춰 보면 예비비 명세를 숨길 이유가 없다. 지난해 말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국정 교과서 편찬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인 만큼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교육부도 지난해 10월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하면서 집필진과 편찬 기준을 공개하고, 각 단원의 집필이 끝날 때마다 온라인에 게시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필이 시작되자 교육부와 국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교육부는 “편찬 기준은 완성됐지만 공개 시점은 결정된 바 없으며 집필이 끝날 때까지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국정 교과서 편찬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판 받는 부분은 개선해 나가야 한다. 감추고 숨기는 것이 많아지면 의구심도, 후폭풍도 커지는 법이다.
이은택·정책사회부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