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대북제재 가속]<下>제재 눈치보는 공장들 ‘北-中교역 위기’ 단둥에 가다
‘北에너지 생명줄’ 中석유저장소 19일 찾아간 중국 랴오닝 성 단둥 시 북쪽 전안 구 러우팡 진 싱광 촌의 석유저장소. 만약 중국이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면 이곳 송유관 밸브를 잠가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조치가 북한 정권 붕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단둥=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단둥=구자룡 특파원
중국이 주변 지역에 원유를 공급하는 동시에 대북 수송용 원유를 보관하는 이곳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의 ‘핵심’인 곳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곳의 송유관을 잠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자고 압박하지만 북한 붕괴를 우려하는 중국은 요지부동이다.
중국은 헤이룽장(黑龍江) 성 다칭(大慶) 유전과 랴오닝 성 랴오허(遼河) 유전 등 동북 지역에서 나오는 원유를 이곳에 모아 일부를 1974년부터 압록강 바닥을 지나 북한으로 가는 11km 길이의 송유관을 건설해 북한에 공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0대 초반의 한 주민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중국이 저 송유관을 끊을 수 있겠느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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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20일 오전 11시경 찾아간 ‘단둥신타이(欣泰)집단’ 공장 담 너머로는 북한 근로자 기숙사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압기를 만드는 이 공장에는 적어도 100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가전 및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인근 ‘단둥화르(華日)집단’에도 100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가 파견돼 일하고 있다.
근무 시간이어서인지 거리나 공장 마당을 오가는 북한 근로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북한 근로자들은 평소에도 공장 안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올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한 중국 내 반북(反北) 감정이 고조되면서 모습을 더 감추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인들은 저임금 북한 노동자 덕에 쏠쏠한 재미를 봤다. 특히 2010년 한국의 5·24조치로 한국 기업이 북한의 공장에 발주해 받아 가던 생산 물량이 없어지면서 이들 공장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들이 대거 중국 기업체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단둥을 비롯한 중국 동북부 지역에 수천 명의 정보기술(IT) 전문 인력도 파견해 외화벌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중국 근로자에게는 적어도 월 500달러가량을 줘야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은 월 200달러도 안 받고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인도 “일주일에 두 번이나 근무 시간에 2, 3시간씩 일은 안 하고 회의를 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임금도 싸고 손재주도 좋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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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상이기는 단둥에 진출한 한국 교민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12년째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는 교민 A 씨는 “고객의 30%는 중국인, 30%는 한국 교민, 40%는 북한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며 “하지만 5·24조치 이후 북한 고객이 거의 끊어지고 이제는 한국 교민도 크게 줄어 중국의 다른 지방으로 가야 할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곳 한국 기업인들은 5·24조치 이후에도 북한에 뚫은 거래처를 버릴 수 없어 중국인 명의를 빌려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이것마저 어려워져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가 많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사업을 하며 ‘통일 일꾼’이라고 자부하던 것도 옛말이 됐다. 교민 B 씨는 “한때 3000명이 넘던 단둥의 한국 교민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도 많아 이제는 수백 명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단둥=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