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형님이 숙주나물을 기르려고 녹두를 꺼내보니 반은 돌씨더라는 것. 반이나 버리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래, 혹시 오래 놓아두면 언젠간 붇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돌씨까지 몽땅 물에 넣었다고 한다. 역시 정상적인 녹두 씨는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붇기 시작했다. 이때 붇지 않는 것은 골라내 버려야 한다. 불은 것과 같이 두면 썩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버리지 않고 다른 그릇에 옮겨 계속 불리니 나흘 후 그중 반 정도가 불었다는 것이다.
“그때 문득 깨달았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면 돌씨도 결국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고집스럽게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도 기다려주면 열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니까 나흘이 지나도 끄떡없는 돌씨가 안쓰럽더라고. 얼마나 굳었으면 풀리지 못하고 저렇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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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꼼짝 않고 남아 있는 돌씨를 며칠 더 기다려보려고 한다는 형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돌씨들이 더이상 고집부리지 말기를, 아무리 기다려주어도 발아하지 못하여 이름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씨앗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일이면 눈이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다. 이제부터는 ‘우수 뒤 얼음같이’ 슬슬 녹고 풀려서 싹이 트고 꽃을 피우는 봄이 올 것이다. 아니, 절기상 봄은 와 있다. 음력에서는 정월을 봄의 절기에 넣는다고 하니 말이다. 다만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왔지만 아직 웅크리고 있는 겨울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있는 중일 것이다. 올봄에는 부디 늦된 것들까지 모두 싹을 틔운다면 얼마나 세상이 환해질까. 그런 찬란한 봄을 기다려본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