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산업부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돈이 핵심인 기업에서, 이 경우 자기희생은 ‘사재 출연’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난에 빠진 현대상선을 구할 자구책의 하나로 사재 출연을 결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기업 총수들의 사재 출연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보통 재벌의 사재 출연은 2006년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사태’나 2007년 ‘삼성특검’ 때처럼 기업이 곤경에 처했을 때 여론 전환용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또 최근 청년희망펀드나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발표한 지역상생발전 방안처럼 다른 기업이 할 때 다 같이 하거나, 또는 더 큰 사업을 위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다만 이 경우는 기부에 가까운 행위여서 쓰러져가는 기업을 살리기 위한 사재 출연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총 33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지난해 말 박 회장이 사실상 지주사인 금호산업을 되찾고 그룹을 재건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당시 사재를 출연하며 채권단에 보인 ‘진정성’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현 회장이 이번에 출연하는 액수는 200억 원 미만으로 알려져 6조 원대에 달하는 현대상선의 부채 규모나 앞선 사례들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다. 하지만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진정성을 보임으로써 채권단에 지원 명분을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악의 경우를 맞아 삼성처럼 기업을 떠나보내야 할지, 금호아시아나처럼 먼 길을 돌아서라도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보인 리더십이 이번 주 내내 진행될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1일 현대상선 주가도 12.11% 급등하면서 이 같은 기대에 화답했다.
김성규·산업부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