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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금수저인 네가 뭘 알아?”

입력 | 2016-02-02 03:00:00

초등생 사이에 번지는 ‘수저 계급론’





동아일보 DB


경기지역 한 초등학교 4학년 A 군은 최근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겠다고 나섰다가 마음을 다쳤다. 친구로부터 “‘금수저’는 ‘흙수저’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 한다”며 매몰차게 거절당한 것. A 군은 다른 친구들보다 좋은 학용품을 쓴다는 이유로 얼마 전부터 반 친구들에게 ‘금수저’로 불리기 시작했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최근 초등생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문제가 되고 있다. 부모의 재산, 평소 사용하는 물건 등에 따라 주변 친구들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으로 분류해 부르는 초등생들이 많은 것.



아파트 크기에 따라 수저 색깔이?

서울에 사는 초등 5학년 B 군은 여러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이 학교 초등생들이 수저 색깔을 결정하는 기준은 사는 아파트의 크기. B 군은 학교 주변 아파트 중에서 큰 편에 속하는 곳에 살아 ‘은수저’로 통한다. 하지만 B 군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C 군은 ‘동수저’다. C 군의 아파트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전세이기 때문.

B 군은 “집의 크기나 부모님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고 수저의 색깔을 나눈다”면서 “넓은 집에 살고 부모님이 비싼 차를 타고 다녀야지만 ‘금수저’”라고 말했다.

B 군의 학교에서는 수저색깔에 따라 어울리는 무리도 달라진다고 B 군은 전한다. 서로 속한 환경이 다르면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B 군은 “평소 사용하는 학용품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제품 등에 따라 수저색깔을 나누기도 한다”면서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많이 사용하면 ‘금수저’로 인정받는다”고 했다.



‘흙수저’ 자처하며 아이템 구걸하기도

초등생들은 인터넷이나 또래 친구들을 통해 수저 계급론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B 군은 “웹툰이나 온라인 유머사이트, 게임 등을 통해 수저 계급론에 대해 알게 됐다”면서 “온라인 게임에서 나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거짓말하면서 아이템을 달라고 구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한 초등학교 5학년 D 양은 “학교에서 6학년 언니들이 자신이 ‘흙수저’인 것이 부모님 탓이라며 불만을 쏟아내는 것을 들었다”면서 “‘흙수저’가 무엇인지 궁금해 집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알게 됐다. ‘흙수저’의 정확한 뜻을 알기 전까지는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표현인 줄 알고 나도 몇 번 사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존감 낮아지고 쉽게 포기하게 돼

초등생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수저 계급론’은 초등생들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기지역의 초등학교 5학년 E 양은 “최근 한 친구가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 등교하자, 그 친구의 예쁜 옷과 자신의 옷을 비교하며 ‘흙수저가 된 것 같다’며 한숨을 쉰 친구도 있었다”면서 “자신이 흙수저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자꾸 다른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금수저인 친구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초등생들이 부모의 재산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것에 익숙해지면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력해져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된다”면서 “학교나 가정에서 ‘금수저’나 ‘흙수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정원 기자 monica8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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